자작 수필, 단상

나를 위한 선물

조은미시인 2022. 10. 6. 03:26

나를 위한 선물
조 은 미

사람이 목적없이 노는 것 만큼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 없다.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소파만 지키고 있으면 영락없이 환자가 된다. 우리 나이는 딱히 큰 병이 없어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게 일상이라 집에 있으면서 퍼지기 시작하면 없던 병도 생기기 마련이다. 갈 데 없으면 시장을 한 바퀴 돌더라도 움직여야 동티를 면한다.

매주 수요일은 하모니카 수업이 있는 날이다. 화장을 하고 외출복이라도 갈아입고 나서면 없던 힘도 생긴다. 조금 여유있게 도착하여 도로옆 공원 벤취에 앉아 하늘을 본다.유리 구슬 처럼 파란 하늘이 가을을 이고 있다. 휠체어에 따뜻한 햇살을 밀고 가는 노부부의 뒷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뭇잎들도 가을을 보듬고 있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시간 속에 나도 가을이 되어 선다.

열심히 뭔가를 배우는 일은 행복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어느새 제법 분위기 따라 하모니카를 불 만큼 되었으니 사는 낙이 하나 더 늘었다. 하모니카 배우는 것도 좋지만 꾀 오랫동안 한 교실에서 정이 들은 동호인들과 수업 후 나누는 티 타임도 즐겁다. 젊은이들 속에 섞이면 덩달아 활기가 솟는다. 늘 차 값을 도맡아 계산하시는 청일점 잰틀맨 회장님의 넉넉함에 참새 떼의 수다가 늘어지는 한껏 행복한 오후이다.

오늘은 수업 후 특별한 계획이 없이 한가하여 느긋하게 혼자 즐기기로 한다. 강변 CGV의 상영 시간표를 검색하니 마침 유승룡, 염정아 주연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 상영 시간과 맞물려 서둘러 매표를 하고 들어간다. 극장 안에는 연인인듯한 커플과 나 단지 세 사람 뿐이었다.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며 잔잔한 감동에 젖는다. 무뚝뚝한 남편 진봉과 살갑지 못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던 세연이 2개월 시한부 폐암 선고를 받는다. 그간 가족들을 위한 삶만 살아왔던 세연이 드디어 자신만을 위한 마지막 삶을 살아보겠다 결심하고 10가지 소원 목록을 작성한다. 문득 첫사랑을 떠올리며 남편에게 이름 석자만 아는 첫사랑을 찾아주길 부탁한다. 아내를 위해 첫사랑을 찾아주기로 마음 먹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남편 진봉의 속 깊은 사랑이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뚝배기 같은 전형적인 한국 남편상인 진봉을 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쑥스러워 아끼던 먼저 간 남편이 생각난다. 뇌종양으로 인지 능력이 점점 흐려지고 팔이 마비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졌을 때 입원실 보조 의자에서 잠자던 내 손을 아직 미세하게 감각이 남이 있는 손으로 가만히 쥐어주던 남편의 그 손길이 백 마디, 천 마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부부의 사랑이란 그런 것 아닐까? 겉으론 덤덤한척 해도 이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감사로 귀하게 여겨지는 반 쪽! 오늘따라 그의 빈자리가 유난히 허전해진다.

세연이 첫사랑을 우여곡절 끝에 찾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 였다. 동생을 통해 오빠의 첫사랑 상대가 자신이 아니라 가장 친했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세연은 허탈해진다. 여행 중 가는 곳 마다 남편과의 진솔한 사랑의 추억을 만나며 자신이 사랑했던 첫사랑이 죽은 그 남자가 아니라 남편이란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진봉은 아내를 위해 마지막 이별 파티 이벤트를 기획한다. 그간 사랑했던 지인들을 불러모아 세연이 얼마나 사랑받고 살았던 존재 이었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떠나는 세연을 위한 남편의 최고의 선물 이다. 사랑을 나누던 지인들과 이별 파티를 열며 죽음을 밝고 아름답게 그려가는 이야기가 사뭇 감동을 준다. 이 땅에서 즐겁게 살다가는 것을 감사하며 마지막을 그리 즐겁고 행복한 파티로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밝은 터치로 인생의 가을을 되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죽음이 어둡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 잘 살다 떠나는 감사의 시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는 대면하게 될 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을 것인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죽음을 순리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가는 길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겸허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참으로 의미있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다. 밝은 기운이 충만해진 기쁨으로 영화관을 나선다. 죽음에 대해 새로운 가치관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강추하고 싶은 영화이다.

9층의 전문 음식점을 돌며 뭔가 먹고 싶은 식욕이 솟는다. 뭘 봐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더니 입맛이 다시 제 집을 찾아온 걸 보니 이제 수술 후의 빠졌던 기도 돌아오는 모양이다. 모듬 초밥을 시켜놓고 맛나게 먹는다. 행복이 스멀스멀 기어온다. 선물같이 주어진 하루에 감사가 넘친다. 그래 사랑하며 사랑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이고 아름다운 일인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살 맛 나게 한다. 늘 사랑의 울타리에 둘러싸여 살아감에 감사한다. 스스로에게 준 멋진 선물로 행복했던 하루! 역시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제목처럼. 아름다운 나의 삶이여! 마르지않는 감사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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