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추석 명절의 언저리에서

조은미시인 2022. 9. 10. 09:54


































추석 명절의 언저리에서
조 은 미

오래 교직에 근무하다 은퇴 후 고향에
내려와 사는 초등학교 단짝 친구의 동생이 명절 이벤트로 준비한 친구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첫날 이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가 염려되어 창문을 여니 청명한 가을 하늘이 높다. 마음 조리던 힌남노가 빠져나간 들녘이 평회롭다.다행히 내륙의 산간지방이라 비만 많이 내리고 생각보다 별 피해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차로 15분 정도 재를 넘으면 친구네 집이다. 가을이 내려 앉은 고즈녁한 산길에 들국화가 피어 반긴다. 길가 열린 마당에 집집마다 명절 쇠러 고향을 찾은 차들이 들어찬 모습이 정겹다. 학창 시절 서울에서 자취하며 명절 때마다 손꼽아 기다렸던 귀성길이 생각난다. 나이들어 고향에서 산다는 건 정서적으로 참 편안하고 안정감을 준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추억이 서려있어 산천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고 따사로워 진다.

친구집에 도착하니 초록 잔디밭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림들이 멋지게 전시 되어 있었다.내가 보낸 축하 화분도 한 자리 거들고 다른 친구들 몇이 보낸 국화 화분도 군데 군데 자리를 빛내고 있다. 언제 이리 많은 작품을 그렸는지! 동생 덕분에 창고에서 잠자던 그림들이 깨어나 빛을 본다며 친구도 흐믓해한다. 어제 저녁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땀을 뻘뻘 흘리며 잔디를 깎았다는 남편의 얼굴에서도 흐믓한
미소가 번진다. 그림 하나 하나에 그녀의 영혼이 스며있다. 소박하고 밝고 따뜻하다. 조촐하지만 사랑이 머무는 행복한 전시회! 어떤 전시회보다 감동이 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두 자매의 우애가 부러울 만큼 아름답다. 친구도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미리 와 있는 남자 동창들도 반갑고 정겹다. 아직 추억을 나눌 벗들이 있어서 고향이 더 푸근하게 여겨진다. 추석 명절의 풍성함을 더불어 누린다.

돌아오는 길에 직접 제주도 산에서 채취해 말렸다는 고사리를 한 봉지 들려준다. 늘 넉넉히 마음 써주는 친구가 고맙다. 서울로 올라가는 반대 방향의 차선은 아직도 주차장이다. 고속도로가 텅 비어 편안하게 돌아온다. 추석날은 딸이 뮤지컬 표를 예매해 놓았다니 또 즐거운 날이 되겠지. 보름달처럼 풍성한 명절 연휴를 보내며 감사한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TV 뉴스를 튼다. 힌남노로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추석 명절을 더 힘들게 보낼 이재민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좁은 땅 한편에서 불행을 당한 이웃들을 생각하면 명절을 즐겁게 보내기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빨리 복구가 이루어져 하루 속히 평범한 일상으로 회복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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