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안의 쉼
조 은 미
날마다의 삶이 쉼이지만 때로 우선 멈춤이 필요하다. 며칠 백수가 과로사할 정도로 나갈 일이 많았다. 오늘은 별다른 일정이 없어 느긋하게 일어나 한껏 게으름을 부린다. 아침도 거르고 밀린 원고 정리 하느라 글 삼매경에 빠진다. 글을 쓸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때를 잊고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자유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거실에 살포시 찾아드는 햇살도 따뜻하고 등을 받쳐주는 소파도 편안하다. 11시가 겨워서야 시장기를 느껴 글 쓰기를 멈춘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한다. 나설 데는 없어도 코발트빛 점퍼에 빨간 모자를 쓰니 절로 상큼한 기분이 든다. 뭔가 요기는 해야할 것 같아 시장의 손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손만두국을 먹어볼 요량이다. 양도 적당하고 고춧가루 빨갛게 넣은 다대기 양념 간장을 만두에 한 술씩 얹어 뚝뚝 꺼먹는 맛이 얼마나 맛난지 만두를 먹을 줄 아는 사람은 그 맛을 안다. 구수한 멸치 육수 우려낸 뜨끈한 만두국 한 대접을 칼칼한 풋고추 썬 것 겯드려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 한 수저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가끔 엄마 손 맛이 그리울 때 내 마음을 채워주는 추억의 음식이 손만두국인 것 같다. 아버지께서 만두를 좋아하셔서 명절 때 아니라도 집에서 신 김치와 돼지고기, 두부 다져 넣고 숙주, 당면 삶아 소를 만들어 자주 만두국을 끓여 주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 하면 특별히 떠올려지는 음식이 있을까 싶다. 아이들을 위해 뭘 정성드려 맛나게 해줄 만큼 여유가 없게 살았던 것 같다. 빠쁜 직장 생활 가운데 시어른, 친정 부모님 모시고 대식구가 한집에서 복작 거리며 살아낸다는 것 만으로도 벅찼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누리는 삶이 더 감사하고 소중하다. 나선 김에 단골 미용실에 머리를 다듬으러 들린다. 오늘 따라 손님들이 많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내 차례가 올런지. 책 한권을 다 읽고도 아직 차례가 멀었다. 시간 보내려 작정하고 왔기에 기다림에도 여유가 생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쁘게 변신해 나가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바라보는 것도 즐겁다. 낚시꾼이 찌를 드리우고 한없이 강물을 바라보는 멍때림을 즐기듯 시간을 잊고 기다림을 즐긴다. 이 사람 저 사람 정성을 다해 머리를 만져주는 원장의 쉬지않는 손 놀림에 미를 창조하는 전문가의 진지함이 묻어난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정성을 다해 머리를 손질해주는 손길들이 고맙다. 산뜻해진 머리를 보니 몇 년은 더 젊어 진 것 같다. 나이들 수록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추레해지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디 가서든 나이 든 티를 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도록 노럭할 일이다. 될수록 옷도 갖춰서 입도록 하자. 입성이 그럴듯 해야 누구에게든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 벌써 짧은 해가 어둑해진다.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삼키는 한길 건너 전주 콩나물 국밥집 간판이 침샘을 자극한다. 먹고 싶은 식욕이 솟는 건 얼마나 건강한 삶의 욕구인가? 머리 손질을 끝내고 콩나물 국밥집을 향한다. 혀가 델만큼 뜨거운 콩나물 국밥이 뚝배기에서 설설 끓는다. 호호 불며 한 입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감칠맛 나는 깔끔한 새우젓의 뒷맛이 혀끝에 착착 감긴다. 기대한 맛 이상이다. 진수 성찬인들 이 맛만 할까. 뜨거운 국물을 떠넣으며 시원하다는 표현의 역설은 한국 사람만이 느끼는 맛의 정서 이리라. 행복한 미소가 절로 솟는다. 느긋 하게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긴 기다림까지도 여유로웠던 하루. 기분 좋을 만큼 예뻐지고 배까지 든든하니 부러울 것이 없다.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생기롭다. 오늘도 오롯이 하루치의 행복을 통장에 입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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