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머무는 언저리
조 은 미
'정'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사물이나 대상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또는 오랜 동안 지나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 되어있다. 그러나 정이라는 말에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감정, 윤리적, 정서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오래된 물건에 정이 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부부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 하지만 사랑이 식어도 정 때문에 살아간다고들 한다. '정든 임 ' 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정' 은 살갑고 도타운 사랑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정' 이란 말에서 굳이 설명 안해도 'love' 와는 또 다른 어떤 애틋하고 따뜻한 정서를 공통적으로 느낀다. 그러고 보면 '정' 은 '한민족' 으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성의 뿌리에 흐르는 내면의 인간적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매달 만나는 여고 동창 모임에 특별한 손님이 초대 되었다. 누구도 친한 사람이 없었고 그저 이름만 아는 동창 부부이다. 졸업 후 50 년이 넘도록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처음 만나는 친구이다. 모임 중의 한 친구와는 가끔 카톡으로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인데 미국서 여행을 와서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한다고 소식을 전한다. 모처럼 고국 방문한 친구이고 친한 친구가 연락이 되는 터도 아니라니 우리 모임에 부부를 함께 초대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번 달엔 뜨끈한 만두국이나 한 그릇씩 먹자고 메뉴를 정했었는데 그래도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라 급히 회집으로 메뉴를 엎그레이드 시켜 장소를 변경했다. 이름만 듣고는 학창시절 얼굴도 가물거리는 친구인데 어떻게 변했을지 자못 궁금했다. 잘 생긴 호남형의 남편을 대동하고 친구가 나타났다. 얼굴을 보니 옛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서로 교우는 없었지만 낯익은 얼굴이다. 모두 반갑게 맞는다. 부부가 은퇴후 70 여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며 노후를 멋지게 보내고 있단다. 50 여년의 벽이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화기애애하게 점심 식사를 마쳤다. 계산하려고 일어서니 남편 되시는 분이 어느 틈에 먼저 계산을 하셨다. 경우가 아니라 민망스러웠지만 남편의 멋진 메너에 매료되었다. 커피를 마신 후 청와대와 경복궁을 둘러 보기로 했다. 개방 초창기 북새통을 이루던 청와대 관람이 경로 우대로 예약 없이도 당일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구중 궁궐에서 시민의 품에 돌아온 청와대의 가을이 내려앉은 뜨락을 한가하게 거닐며 참 많은 생각이 스친다. 우리 역사의 굴곡이 이루어진 현장에 서 있는 감회가 새롭다. 접견실 벽에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많은 대통령들이 거쳐갔는데 왜 모두 비운의 대통령들만 있을까? 언제나 우리는 국민의 추앙을 받는 존경스러운 대통령을 가져 볼 수 있을까? 국민의 품에 청와대를 돌려준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되듯이 그런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무너진 모든 질서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로운 강국으로 우뚝 세우는 능력있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멋진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열망해본다. 경복궁 뜨락에도 가을이 한창이다. 만추의 향원정이 석양에 고운 자태로 맞는다.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제법 많다. 이제 코로나의 족쇄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생기가 느껴진다. 내친 김에 11월 중순 부부가 떠나기 전 2박 3일 남도 여행을 함께 하기로 즉석에서 의견을 모았다. 저녁엔 김치찌개가 그립다는 부부에게 시장 골목에서 양은 냄비에서 뽀글뽀글 끓는 김치 찌개 한 냄비 앞에 놓고 정담을 나눈다. 도무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인되는 정때문에 보너스를 받은 듯 행복한 하루였다. 멋지게 익어가는 친구 부부에게 내일은 추어탕 한 그릇씩 대접하기로 약속하며 헤어진다. 따뜻하고 행복한 고국 여행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