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까며
조은 미
얼마 전 초등학교 절친이 떨어진 아람을 많이 주웠다며 되가웃 실히 되는 밤을 나누어 주었다. 한가하게 앉아 밤을 쪄먹을 여유가 없어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오늘서야 꺼내 찐다. 찬물에 한시간 정도 불렸다 센불에 20 분가량 삶아 뚜껑을 열지 말고 10분 쯤 뜸 들인 후 찬물에 씻어 건지면 밤 껍질이 호르르 잘 까진단다. 하라는대로 했더니 단단한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가시로 철갑을 두르고 단단한 껍질로 싸는 것도 모자라 속 껍질까지 까실하게 무장한 밤을 삶아 까놓으니 포근포근한 노란 속살이 얼마나 고소하고 맛나던지. 잇새에 씹히는 고소한 밤 맛에 친구의 사랑도 고소하게 씹힌다.
밤을 까며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때로 밤송이처럼 까실한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밤 껍질처럼 바늘 하나 안들어갈 정도로 단단하여 맘문을 열기가 어려웠지만 일단 서로 맘이 통해 빗장이 열리니 부드럽고 푸근한 진면목이 드러나 지금은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되어 지낸다. 사귀기는 어려웠지만 오래 변함이 없다.
그런가 하면 참배처럼 달착지근하게 착착 감겨 입에 있는 것이라도 빼내줄 것 처럼 친하게 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칼로 무자르듯 언제 봤던가 싶을 정도로 무섭게 돌변하여 지금은 연락도 안하고 지내는 친구도 있다
밤은 까 봐야 맛을 알고 사람은 오래 지내봐야 속을 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하지 않던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속 사람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장맛은 오래 묵을 수록 좋다. 친구도 오래 묵은 친구가 편하고 좋다. 몇 십년 곁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오늘 따라 보고 싶다. 초등학교 동창, 고등학교 동창, 대학동창, 오랜 이웃, 직장 동료, 문우들. 머물렀던 자리 마다 좋은 인연으로 만나 오래 함께 하고 있다. 사는 날까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지켜가야할 참으로 소중한 벗들이다. 오늘은 카톡으로 안부라도 전해야 겠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 따라 고소한 밤 내음이 은은하게 가슴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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