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내 편

조은미시인 2022. 12. 22. 18:12

내 편
조 은 미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개성이 다르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한가지 사안에 대해 어쩜 그리도 다른 가치관과 시각으로 보는지 ! 각자 논리를  들어보면 한 편에서는 선인 것이 또 한편에서는 악이 된다. 도무지 합쳐질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며 극과 극으로  치닫는다.

  그동안 쌓아온 정리나  인간적 도리로  보나 싱식적인 범주를  넘어선 일방적인 자기 기준을 잣대로  상대를 재단하며 몰아세우는 황당한 경우를 당하면  심정이 상한다. 기억의 오류를 잡아주는 증거를 눈 앞에 들이대도  무조건 자기 기억이 옳다고 우겨대는 억지와  막무가내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더구나 상대를  배려한 선의를 왜곡하여 악의로 매도할 때  가슴이 온통 고추가루 뿌린 듯  쓰리고 아린다. 보편적인 가치기준에서 벗어나 병적일 정도의 뒤틀린 시선으로   인격적  모독을  느낄 만큼 퍼붓는 억지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말 응대도 상대와 대화가 가능할 때  하는 이야기다. 전혀 통하지 않는 일방통행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감정을 낭비하는 일에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구구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봐야 헛일이다.  정신적인 피로만 쌓이고 피곤할 뿐이다.  한 편 생각하면 자기 아집에  묶여  논리적 판단을 상실할 만큼 영혼에 병이 든 건 아닌가 싶어 측은지심이  든다. 그럴 때는 부딪치지 말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논쟁해봐야 똑같은  아류의 사람이 될 뿐이다. 관심을 끄고 상대를 위해 잠잠히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릴 일이다.
  
  말도 안되는 일로  억지를 부리는 지인의 카톡을 받고 잠깐 우울하고 속이 상했었다.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는 자체가  무익한 일이기에 툭툭 털고  일어선다.  '괜찮아 , 힘내'  하며 자신을 다독인다 . 이럴 때 글쓰는 일은 참으로 신통력이 있다. 글을 쓰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조명해보면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이 생기고 위로가 된다.

  100 이면 100 사람이  다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몇 사람이  마음에 안들어 한다해도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더  많기에  힘을 얻는다.  글 쓰는 사람이기에 밥먹듯 일상을 글에 담는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만났건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싶은 분들에게  마음 담은  선물을  Sns로 나눈다. 매일 쓰는 것도 정성이지만 읽어 주는 것도 정성이기에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산다.
   자주  만나지는 못  해도   흐르는  정은 가교가 되어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된다.   보내는 것도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못 보낸다. 많은 시간을 들여  일과처럼  보내는 것은 만난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정보화 시대  행여 자주 보내는 내 글이 부담스러울까 저으기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바쁜 중에 시간을 내가며  보내는 것은  삭막한 세상에  소중한 인연들에게 따스함을 선물하고픈 사랑 때문이다.
  내 글에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고 고마워하시는 분도 많다.  이젠 서로 일상이 되어 많은 분들이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행여 내가 글을 거르는 날은 무슨 변고가 있나 궁금해 안부 전화가 오기도 한다.
  어쩌다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서 이런 선의가 곡해되어 악의적인 댓글을  받을 때  글쓰기를 고만두고 싶을만큼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지 못하고 왜곡해서   일부러  짓밟는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좌지우지 되고  주눅이 들어서야  될 일인가?  그런  일에  일일이 반응 하며  상처 받아 자존감이  무너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제 좋은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눈이 펑펑 내린다. 길도 미끄럽고 기분도 가라앉아 하모니카 수업을  못간다 단톡에 올렸다. 몇 사람이 꼭 나오라고 재촉 문자를 보내왔다.  오라고  관심가져주는 것이 고마와 운동화로 무장하고 나선다.  집 안에서 내다 볼 때보다 길이 다닐만 하다. 발도 디뎌보지 않고 미리 못 간다 포기하는 일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다. 앞길이 막막하고  막혔다고 절망될 때도  일어나 걷기 시작 하면  사방에  길이  열려 있다.  집을 나서니  활기가 생기고  뺨에 닿는 찬 바람에 기분이 상쾌하다.

   늘  베풀기 좋아하는 회원  한 사람이 예쁘게 포장한 양말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준다.  배려하는 마음과 정성이 고맙다.  따뜻함이 가슴에 머문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소소한 일이라도 이리  사람을 감동스럽게 한다.  수업 내내 화기가 넘친다. 수업 후는 커피 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언잖았던 일로 남은 앙금이 다 녹아 내린다. 좋은 사람들과 대화는 우울을 몰아내는 명약이다.

   찻집에서 나오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보낸 내 글을 읽고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위로차  온단다.
맛난 찹쌀떡과 내가 좋아하는 팥죽을 사들고 미끄러운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준 친구가 고마워 가슴이 뭉클한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같은 일을 가지고 독설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픈 맘을 달래주러 만사를 제쳐놓고 먼 길을 달려와 주는 친구도 있다.  친정 언니처럼 푸근하다. 친구의 따뜻한 위로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진정한 내 편이 있어 얼마나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지!  세상은 늘 가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 할 만큼 이름다운 곳이다.
   마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친구 , 어떤 이야기를 해도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친구,  진정한 내  편이 있어 힘이 난다. 회초밥이 유난히 맛나다. 헤어지며 꼭 끌어 안는 가슴에 따사로움이  번진다. 상가 앞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밤거리를 비추고 있다.  흐르는  꽃불 강을 건너는 마음도  환하게 밝아진다.  얼어 붙은 정거장에서 넉넉하고 느긋해진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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