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ㅡㅡ정리 유감

조은미시인 2022. 12. 19. 09:15

정리 유감
조 은 미

어느 새 12월도 막바지다. 꼭 이루어어야할 것도 없고 쫒아오는 이도 없는데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뭔가 할일이 많은데 미루어 둔 것같은 개운하지 못한 찜찜함으로 허둥 댄다. 막상 일을 하려해도 손에 잡히질 않고 마음은 허공을 난다. 공연히 안절부절 하모니카도 불었다 책도 잡았다 유투브도 켰다 애꿎은 시간만 죽이고 있다.

이렇게 마음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 있을까? 객괸적으로 진단해 보기로 한다. 때가 되서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내년부터 통상적으로 만 나이를 쓴다니 내년에도 여전히 일흔 둘이다. 삶의 시간이 1년 더 길어진 느낌이다. 나이 먹는 아쉬움 때문은 아닌것이 분명하다.

지난 1년을 돌아본다. 거의 매일이다싶이 기록한 글들을 들쳐본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일상들이 무지개 빛깔로 누워있다. 따뜻하고 밝게 가꾸어 온 내 꽃밭이 사랑스럽다. 정말 글처럼 맛깔지고 아름답게 지내온 날들인가?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긍정적인 답변에 동의 한다. 나름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다. 생활 가운데서 남는 후회는 없다.

특별히 계획한 일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을까?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계획이고 목적인 나이에 만족했던 삶에 별다른 불만도 없다. 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진치고 있어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웃고 즐기고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따뜻하고 무탈하게 지내온 한해에 감사한다. 그럼 안절부절 불안한 원인은 무엇일까?

집안을 둘러본다. 거실에 언제적 넣어두었어야할 선풍기가 그대로 놓여 있다. 아니 이게 왜 이제서야 보이는 걸까? 방문을 열어본다.나를 내리 누르는 이 불안의 정체가 드디어 드러난다. 사람마다 한가지 흉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정리 못하는 이 병은 정말 고질병인 것 같다. 방 하나를 아예 허드레 방으로 내 놓고 잡다한 물건들을 있는대로 벌려 놓았는데 이젠 서재까지 입고 벗어둔 옷들이 침대 위에 가득 쌓여 허드레 방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이다.
가슴이 답답해온다. 넓은 집에 빤한 구석이 거실과 안방 뿐이다.
남사스러워 손님도 부르지 못할 지경이다. 이젠 정리의 한계가 넘어 치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버려야할 것들을 버리지 못 하는 데서 오는 적체 현상이다. 왜 버리지 못하고 사는 걸까?

우리 세대는 절약이 몸에 배여 그렇게 마음처럼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한창 멋부리고 다니던 당시 제법 가격을 많이 주고 산 옷들이 허리가 손 마디 두개씩이나 작아졌다.10여 년이나 지난 옷들이다. 그 옷을 입고 다니던 날들의 추억이 옷을 볼 때마다 새롭게 떠오른다. 버리려면 왜 그리 아까운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내 젊은 날들을 송두리째 버리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버려야지 빼놓았다가도 언젠가 살 빠지면 또 입지 싶어 못버리고 그대로 옷장에 걸려있다. 남한테는 그렇게 인색을 떨지 않는데 나한테는 왜 그리 인색을 떠는지! 지나치게 알뜰한 것도 못 말리는 불치병 중 하나이다.
방안 가득 쌓인 잡동사니가 마음의 짐이 될 정도인데 무슨 미련을 떨고 있는 걸까?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변고라도 생기면 정리 못한 이 허접한 물건들로 인해 눈도 편히 못감을 것 같은 불안이 짓누른다. 나 떠나고나면 아이들이 뒤치닥거리 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텐데. 머물렀던 자리 최소한 자식들 손 가는 피해는 주지 않고 가야하지 않을까?

미루던 묵은 김치통을 다 정리하고 나니 얼마나 개운 한지! 날아갈 것같은 산뜻한 기분이 든다. 먹기만 하고 배변을 못한다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버려야 산다. 살기 위해 버리자. 절대적인 명제 앞에 불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았으니 이제 차분히 날 잡아 올해가 가기 전 기필코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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