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하모니카 가슴

조은미시인 2022. 12. 18. 12:20

하모니카 가슴
조 은 미

날씨가 제법 춥다. 올해 들어 첫 추위이다. 몸이 웅크러든다.
하모니카 수업이 있는 날이다. 집에 머물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나선다. 일단 나서면 활기가 생긴다. 하모니카 배운지도 햇수로는 몇 년이 지났다. 처음 배울 때는 하모니카 앞 뒤도 분간을 못했었다. 꾸준히 손을 놓지 않고 배우다 보니 이제는 제법 불고 싶은 곡을 악보 없이 불 정도가 되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 이라 하지 않던가. 무엇이건 시작할 때가 제일 빠른 때이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빈 자리가 많다. 적은 인원에도 열정을 다해 가르쳐주는 강사님이 고맙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습했다.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어쩌면 이다지도 빠른지. 한 해를 마무리하며 후회보다는 열심히 살았음에 감사한다.

캐롤을 부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캐롤을 부르며 새벽송을 돌던 추억이 생각난다. 새벽에 교우들 댁을 찾아다니며 캐롤을 불러주면 기다렸다 나와 함께 찬양을 부르고 준비했던 선물을 한 아름씩 들려 보냈다. 그런 정감있는 풍경도 생활 방식의 변화에 밀려 구시대 유물로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년말 송년회 자리에서 기회가 된다면 멋지게 불어 봐야겠다. 하모니카 배우기를 잘 했다. 지금은 무료할 때 가장 가까이 하는 벗이 되었다. 덕분에 늘 촉촉한 가슴으로 산다.

하모니카를 불 때마다 음색이 이루는 조화에 매료된다. 윗 구멍에서 나는 주음은 아래 음과 하모니를 이루며 부드럽고 풍성한 소리를 낸다 . 아랫 구멍을 입술로 막고 주음만 불면 단조로운 단음 소리가 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 살아가기는 어렵다. 세상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가 유지될 때 행복함을 느낀다. 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외로움이라고 한다. 요즘 핵가족화, 노령화의 와중에 고독사하는 노인이 늘어간다. 이웃 사촌이란 말도 옛말이 되었다. 이웃과도 점점 담을 쌓고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개인 주의가 팽배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을 할 때도 님비현상이 보편화 되고 있다.

어디서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기피 인물이 된다.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비난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은 때로 그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나이가 한 살 늘어나는 만큼 마음의 나이도 더 성숙해가면 좋겠다.
마음 자리가 넓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한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늘 사람다운 향기가 난다. 푸근해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집에 오는 도중에 아들이 친구와 집에 다녀간다고 전화가 왔다. 근처 왔다 인사드리려 들렸단다. 내가 없어 과일만 놓고 간단다. 모처럼 들렸는데 얼굴도 못 보고 보내 서운했다. 어렸을 때 한동네서 제 집 드나들듯 자주 드나들면서 나도 아들처럼 정이 들었다. 저도 어머니 어머니 하며 깍뜻이 엄마 대접을 해주니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 . 식탁에 아들 친구가 놓고간 레드향 한 상자가 향긋한 향기로 반긴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카톡으로 초콜릿을 답례로 선물했다. 레드향 하나 까서 입에 넣으니 달콤함이 입속으로 가득 번진다.

년말이다. 격조했던 분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동안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 준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뭉클 그리움이 솟는다. 삭막한 세상에 하모니카 하나씩 가슴에 달고 살고 살면 어떨까? 이웃 음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하모니카처럼 주변을 배려하는 따사로움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이기적인 자아가 고개 들 때마다 내면의 또 다른 자아가 하모니카를 닮아간다면 우리는 늘 부드럽고 풍성한 화음을 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가슴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입속으로 캐롤을 웅얼거려 본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겐 선물을 안 주신대." 캐롤을 타고 따사로움이 온몸으로 번진다. 덩그만히 혼자 지키는 거실에도 온기가 들어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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