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푸른 노년

조은미시인 2022. 12. 24. 11:47

푸른 노년
조 은 미

   계간 문예에서 주최하는 시와 음악의 만남 송년 콘서트가 있었다. 연주 동우회의 일원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계간 문예에서 작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십여 명이 모여 동우회를 시작한지 벌써 세 돌이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활동을 못하다 올해는 3돌 맞이 기념 연주회를 시낭송 행사와 더불어 이화회관에서 갖게되었다. 모두 연만하신 분들로 이루어졌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 지휘자도 없고 전문적인 음악인도 없이 자체적으로 연습하는 초보 아마추어들이다. 젊은 시절부터 오래 악기를 다루었던 분들이라 연습곡만 주어지면 유투브 엠알에 맞추어 열심히 집에서 연습한 후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 때 모여 맞추어 본다. 계간 문예 행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마스코트로 사랑을 받고 있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여러가지 잃어가는 상실감으로 인해 자칫 우울해지기도 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기복이 심한 감정에서 오는 혼란과는 또 다른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며 가슴앓이를 한다. 보통 사추기라는 이름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이런 노년기에 자신을 몰입할 수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취미가 같은 동우회에 소속해 활동한다는 것은 생에 큰 활력이 된다.

젊음의 기준은 나이 고하를 가지고 논할 수는 없다. 나이가 젊어도 노인 같이 사는 젊은이가 있는가하면 노인이어도 젊은이 같은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
연주 동우회 회원 중 반 이상이 팔십이 넘으신 분들이다. 풀륫, 전자호른, 하모니카, 리코더, 우크렐라등 다양한 악기가 모여 팀을 이룬다. 모이면 연습도 하고, 담소도 즐기고, 맛난 것도 먹고 유유지적하게 보낸다. 노년에 이렇게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동우회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모일 때마다 늘 푸근하고 즐겁다. 서로 힘이 되어 더 젊어짐을 느낀다.

송년 콘서트는 연주 사이 사이 시낭송을 곁들인 멋진 무대였다. 합주도 하고 개인 연주도 하며 그동안 닦아온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연말 분위기의 흥취를 돋구고 무대를 빛내기 위해 검정색 반짝이 드레스까지 입고 무대에 섰다. 제법 전문 연주자가 된 기분이다. 보는 사람도 즐겁고 연주회 격도 높아지고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일이다. 연주할 때 갖춰입는 것이 무대 메너이고 관객을 대접하는 연주자의 태도가 아닐까? 몇해 전 일본 , 러시아 크루즈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 초대된 가수가 반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불렀다. 그 무성의함에 어쩐지 무시 당한 것 같은 불쾌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모두들 즐거워 하고 화기애애한 가족같은 분위기의 따뜻한 행사였다.

사라지는 순간들을 렌즈 안에 가둔다. 가까운 분들 연주 모습을 하나하나 동영상에 담았다. 나중에 보내주면 다들 고마워한다. 서로 정이고 배려이고 사랑이다.
이심 전심인지 몇 분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그 순간의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피드백 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고 지나간 어설픈 장면들이 눈에 보인다. 시낭송할 때 마이크에 맞추느라 허리를 구부리고 했던 것이 거슬린다. 마이크를 손에 들고 했더라면 좀 더 당당하게 보였을 텐데. 그 생각이 왜 안들었을까? 다음에는 그런 부분을 고쳐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서야되겠다.

꽃에는 향기가 백리, 천리까지 간다는 백리향과 천리향이 있다.
사람의 품격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를 인향이라 한다. 인향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다. 정이 흐를 때 사람에게서 향기가 난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할 때 은근한 향기가 풍긴다. 향기가 나는 사람 곁에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은 함께 함이 편안하다.

나이들어 갈수록 숙성해가는 깊은 향기가 나면 좋겠다. 대접 받으려 윗자리만 찾지말고 쓸데없는 고집으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좋은 인향에 취해 서로 있음이 고맙고 감사한 한해였다. 행사 후 뷔페에서 회식으로 뒤풀이하며 따뜻함을 나눈다. 한 분이 다리를 삐끗하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참석을 못해 아쉬웠다. 모쪼록 건강하고 새해도 더 젊은 기운으로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저녁 바람이 차다. 손이 곱을 정도의 추운 날씨지만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볍다. 가슴에도 푸른 물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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