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ㅡ오늘 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조은미시인 2024. 5. 29. 00:51









오늘 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조 은 미


  채운정 뜨락에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붉다 못해  자줏빛을 토해낸다.
혼자 보기 아깝다.  5월의 끝자락.  오늘은 서울교대 8회 동기 화사회 등산 모임이 있는 날이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산행을 하는 친구들의  사진을  눈으로만 부럽게  바라보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안산 자락길을 걷는다기에  큰 맘 먹고 동참해보기로 했다.  전원 생활은  자연과 친해지며 넉넉해 지는 편안함이 있지만 때로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무료함을 느끼기도 한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설레임에  새벽같이 서둘러  집을 나섰다.
7시20분.
서울 가는 시외 버스를 탔다. 잠실 5단지 시외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 지하철을 2 번이나 갈아타고  약속 장소인 독립문에 닿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모두 반갑게 맞아준다. 언제 만나도 푸근하고 따뜻한 벗들이다. 학교 때는 말 한 번 섞은 일이 없던 친구들도 동기라는 울타리 안에 어느새 십년지기가 된다. 내 글을 읽고 한 번 만나고 싶었다고 다가오는 처음 만나는 친구와  무장해제된  마음에 소통의 다리를 놓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의 마법에 걸려  가슴에 함박꽃이 핀다. 따사로운 마음의 온도가 정상괘도를 벗어나는 행복을 느낀다. 완만한 데크길을 쉬엄쉬엄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3시간여 걸었다.  다리 아픈 친구들을 위한 집행부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다. 쉼터에서  가져온 간식들을 나눈다. 오가는 정 속에 서로의 마음이 녹는다. 날이 갈수록 더 끈끈해지는 끈이 모두를 하나로  엮는다. 신록이 익어가는  초록의 향연  속에 뱀딸기도 군데 군데 빨갛게 익어간다. 하늘도 더 없이 파랗다. 비취빛 푸르름에 빨려들어 걸음을 멈춘다.이토록 맑은 하늘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유리알 같은 하늘을 닮아  마음도 비취빛 물이 든다. 흰구름은 화가가 되어 온갖 문양을 그려낸다. 어느새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추억 속을 난다. 여중고 시절을 영천에서  보냈다. 산 꼭대기까지 들어찼던 판잣집들이 번듯한 아파트로 채워져 멋진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공동수도에 끝없이 늘어서 있던 물통들. 물지개로  집까지 물을 져 날랐던  가난한 시절 이었다. 참으로 격세 지감이 느껴진다. 산책로 긴 데크길이 환경 친화적이고  편안했다.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 길로 내려왔다. 숱한 애환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빛 바랜 애국지사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 나라를 피 값으로 지켜낸 선열들의 고초가  가슴에 아프게 들어와 박힌다. 옷깃이 여며지고 숙연해진다. 가치관이 전도돼 고삐 플린 망아지처럼  제 길을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암담한 오늘의 정치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점심에는 맛난 곤드레  밥으로 입이 호사를 했다.  
19000보 이상을 걸은 유래없는 기록에도  무릎이 건재한 이유는 즐겁고 행복한  마음에 엔돌핀이 넘친 덕분인가 싶다.
마음이 행복하면 몸에도 활기가 넘친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하늘!  샘 솟듯 마르지 않는 우정으로  늘 푸른 하늘을 이고 사는 날들이길  기대한다.  수고한 임원진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 참여하지 못한 벗들에게  안산 자락길의  푸른 하늘 허리 한 줌 베어내어 함께 나누고 싶다. 내 좋아하는 모든  벗들에게   짙어가는 오월의 향기를 가슴에 가득 담아  보낸다.
벗들이여 남은 날이 더 짧은 우리. 건강할 때 자주 만나고 곁에 있을 때 더 사랑하고 보듬으며 늘 푸르른 싱그러움으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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