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사랑이 머무는 언저리

조은미시인 2024. 6. 15. 08:42

사랑이 머무는 언저리
조 은  미


  기다림이 있는 삶은 달콤한 긴장감과 기대로 설렌다. 자라섬에서 서울교대 전체 동기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가슴 뛰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만나면 푸근하고 편안한 자리가 좋아 이  모임을기다리게 된다.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같은 직업에  종사한 공통점은  진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잘 나가는 친구들 만나 주눅들고 부러워 동창회 다녀온 뒤끝이 조금은 씁쓸해지는 다른 대학 동창들과는 전혀 다른 끈끈한 유대감이 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그 자리에서 미소 한 번이면 마음이 열리고 소통의  다리가 놓인다.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뜨락에 내려 선다.
햇살 머금은 보리수가  봉긋 부풀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의 유두처럼 싱그럽다.
조롱 조롱 가지가 휘도록 흐드러진 보리수를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한 알 한알 따 담는다. 냉장고에 저장했던 오디도 꺼내 주스를 갈아 보온병에 챙겼다.

  집에서 가평역 까지 40분이면 넉넉하다.
아직 떠나긴 이른 시간이지만
하마 보고 싶은  마음이 먼저 내닫는다.
호젓한 산길을  혼자 전세내어 달린다.
가평역에 도착하니 벌써 여기 여기 먼저 온 친구들이 반긴다.
미리 예약된 닭갈비 맛집으로 향한다.
식당 앞 나무 그늘에서 보리수를 조금씩 나눈다. 기뻐하는 친구들 모습에 작은 수고의 보람을 느낀다. 맛나게 점심 식사를 한 후 자라섬 광장에 둘러 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하모니카와 시낭송이 있는 조촐한 무대를 가졌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란 시를 낭송했다.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으로 서는 일은 감사한 일이다.

  축제 끝 무렵이라 꽃들이 많이 졌지만 아직 아름다운 자태가 남아 있다. 꽃 속에서 함박 웃음으로 시간을 붙드는 친구들의 모습이 꽃보다 아름답다. 느긋하게 거닐다 선착장 카페에  들어섰다. 잘 모르는 친구가  반색을 하며 나를 위해 시원한 청포도 에이드 한 잔을  주문해준다. 감동으로 가슴이 울컥한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나도 넉넉해진 마음으로 우리 테이블의 차 값을 계산하며 행복을 나눈다.

  돌아오는  길에  큰 느티나무 그늘에 둘러 앉아 기타 반주에 맞추어  추억의 노래들을 합창 했다. 곱게 어울어지는 화음은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가슴을 채우는 평화로움! 누가 우리를 할매 할배라 할까? 그 시절 어디 MT라도 온 느낌이다. 시간을 거스르며 모두의 얼굴에 그리움이 번진다.  사랑이 머무는 언저리에 널려진 행복을 줍는다. 사랑 한다는 것은 늙어도  늙지 않게 하는  묘약이다. 남은 날이 더 짧은 우리. 건강할 때 자주 만나고  서로의 젊음이 되어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수고한 임원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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