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서로의 이름 안에 사는 의미

조은미시인 2024. 10. 19. 22:49

서로의 이름 안에 사는 의미
  조 은 미


  정원 중앙  반송 나무 밑에  초대하지 않은 풀들이 제 집처럼 버티고 있다. 여름 내 기 싸움하다 지쳐 태어난 팔자대로  살라고 손 털고 나앉았다. 풀 뽑은 자리에 어느새 연한 잎들이 또 다시 나붓이 고개를 쳐들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인이 지나는 길에 집에 들렸다. "씀바귀가 지천이네" 하고 그 풀들을 가리킨다. "어머  저게 씀바귀야?" 깜짝 놀랐다. 그 귀한 것을  몰라보고 여름내 웬수 여만을 댔다니!
이름을 듣는 순간 천덕꾸러기에서 갑자기 귀빈으로 격상되었다. 계속 잎이 나왔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뿌리는 건드리지 않으려 한 잎 한 잎 소중하게 다루며 뜯었다. 한 소쿠리 실히 된다. 깨끗이 씻어 연한 소금물에 한나절 이상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적당히 쓴맛이 빠진 후 멸치 액젓에 갖은 양념을 조물조물 버무려 통깨 술술 뿌려 합 접시 담아놓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이름을 안다는 건 관계의 친밀도를 더한다. 170 여명 남짓 참여하고 있는서울교대 동기 단체 카톡 방이 있다. 공지 사항만 전달하는 여느 단톡 방과는 달리  개인 취미 생활이나 근황, 유익한  내용이나 따뜻한 답글등 비교적 자유스런 소통이 허용된다.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오가는 대화 속에  온기가  넘친다. 동기들의 사랑방 역활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이름이 익숙해지니  정스런 소통이 한결 더 끈끈하게 서로를 묶는다. 사소한 일상의 소통은 건조하고   사무적인 무관심의 벽을 허문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한다. 이름을 공유하며 느끼는 친밀감은  모임 공지가 뜨면  열일을 제쳐놓고 참석하고 싶은 열정을 솟게한다.

  오늘은 동기회에서 오대산으로 가을 나들이를 가는 날이다. 새벽부터 몇 번 씩 현관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한다. 하늘이 잔뜩 흐렸다.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친구들과  나눌 생각에 미리 따서  챙겨둔 씨알 굵은 대추 한 보따리도 함께 대동하고 나선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달리는 차창에 스친다. 가슴 가득 따스함이 흐른다. 종합운동장 역에 내려 대기하고 있던 관광 버스에 오르니  미리 탑승하고 있던 친구들이 이름을 부르며 반겨준다.  일상의 탈출은 또 다른 자유의 빛깔로  들뜨게 한다. 늘 뒤에서 열심히 봉사해주는 임원들의 손길이 풍성하다. 한 아름  간식을 챙겨준다. 버스 안에서  재치있는 자기 소개에  까르륵 웃음이 익어간다. 오대산 입구의 맛집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입이 호강한다.  이른 점심 후 상원사 경내를 둘러본다. 소리 없이 가을이 내려 앉은  산사의  고즈녁 함이 가슴에 골을 낸다.  깊어진 가슴에 후드득 비 돋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스친다.  흩날리는 낙엽의 군무가 장관이다.

  상원사에서 4km 정도 선재길을 걸어  월정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용케 참던 빗발이 제법 굵어진다. 우산을 받혔어도  신발과 옷이  비에 다 젖었다.
물을 머금은 산길이 미끄럽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다. 발에 채이는 낙엽에도 가을이 숨어 있다. 능선을 따라 타오르는 불꽃이 핏빛 서러움을 토해내고 있다. 처연한  그 모습에  그대로 붙박이 나무가 되어 선다. 돌돌 구르는 물소리가 서러움을 다독인다.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계곡의 속살을  헤집으며  단풍이 되어 흔들린다. 가슴 한가득  선홍빛 낭만이 찰랑댄다.  우중에 옷은 다 젖고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행보였지만 그러기에 더 특별함으로 남는 여행이었다. 많은 새로운 이름들을 기억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우정의 촘촘한 그물을 엮는 행복한 하루였다.
  벗들이여 서로의 이름에 그리움 한꺼플  입히며  오래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세나.  오늘을 되돌아보는 내일 어느날, 고생스러웠던 빗길 산행 마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글겠지. 뇌리에 새겨진  이름들이 또 하나의 소중한 의미로 남을거야. 잊었던  이름들도 다정하게 불러주는 서로의 따스함으로 서기를 기대하며 모두 건강하게 지내다 반갑게 또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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