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독립 선언

조은미시인 2025. 3. 1. 04:46

독립 선언
조 은 미

3월에는 아들, 사위, 며느리, 나까지 식구들 생일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르 모여있다. 바쁜 일상 속에 며칠 돌이로 생일 축하 모임을 하기도 번거로운 일이라 모두 편한 날 하루 정해 모두어  한 번에 생일 잔치 하는 것으로 퉁치며 지내왔다.

  나이 들어가니 어느 날 부턴가 겹쳐서 더부살이하듯 지나는 생일이 슬슬 서운한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나를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부탁해본 기억은 없다. 그동안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
나이들면 별게 다 서운해진다더니 하잖은 것에 마음이 쓰이는 걸 보니 나도 별 수 없는 노인의 반열에 들어섰는가 보다.

  새해가 되자마자  내 생일 따로 독립 선언을 선포했다.
아이들에게 올해부터는  단독 생일 잔치를 주문하며 응석아닌 응석을 부려본다.  
합리적이고 편한 것이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식들에게 부모의 권위를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도 필요한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음력 위주로 생일을 지낸다.
  내 생일은 음력 2월 27일이다. 요즘 잘 쓰지 않는 음력 날자를  앙력으로 기억하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 쳐놓고도 정작 당일이 되면 내 생일을 잊기 일수다.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2월 27일을 생일로 하자 합의를 했다. 딸이 평일  근무을 피해 주말에 식구들 모임을  주선하고  제가 대접하겠다고 나선다.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독립선언을 기회 삼아 세상에 태어난 날을 감사하며 나를 격려해주기로 한다. 무람하고 가까운 벗에게  서울 볼일 보러 나온 김에 번팅을 제의했다. 두 말 없이 달려와주는 친구가 있어 고맙다. 일산 친구 집에 모여 하루 밤을 지내며 정담이 익어간다. 언제 만나도 편안한 벗들이다.  몸도 성치 않은 친구가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에 잡채, 갖은 나물, 케잌까지 준비하여 정성스럽게 생일상을 차려주며 축하해준다. 감동과 감사로 가슴이 울컥한다.
집안 구석구석 그녀의 섬세하고 세련된 안목으로 꾸며진 실내가 아늑하고 사랑스럽다.

  점심에는 맛난 집에서 내가 거하게  한턱 쏘겠다  호기를 부려본다.
  이름 있는 맛집에서 점심을 대접하며 마음이 흐믓하다.생일날 벗들에게 맛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일이 이리 가슴 뿌듯한 일인지!
  더불어 즐거워하는 친구들 축하 속에 진정한 생일의 의미를 되새긴다.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왔음에 감사한다.
생일날 에미 챙겨주는  자식들이 있어 감사하고 함께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가  있어 감사하다.
샤브사브  끓는 냄비 속에 행복이 보글보글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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