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조은미
세수를 하다 무심코 손을 본다. 요즘 날씨가 추워서 인지 손이 꺼칠해졌다. 윤기가 흐르며 촉촉하던 손이 수분과 기름기가 빠져나가 쭈글거린다. 손등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영낙없는 할머니 손이다. 연식이 오래 되었음을 손을 통해 실감한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일생이 짐작된다.
거친 일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오른 손 중지는
굳은 살이 박혀 단단하다. 아무래도 평생 책상물림을 벗어나지 못 한 탓이리라.
손마다가 툭툭 불거져 주먹이 쥐어지지 않고 손바닥이 갈라져 뺨을 보듬어줄 때도 까실함이 느껴지던 친정 엄마 손바닥의 촉감이 애잔하게 가슴에 얹힌다. 세수할 때 비누를 칠해 양손을 비비며 손과 얼굴을 닦아주시던 아버지의 부드럽던 손의 감촉은 칠십 중반이 되는 이 나이에도 고향처럼 가슴 밑바닥에 애틋하게 온기로 남아 있다.
같은 배속에서 나와도 아롱이 다롱이듯이 한 손에 붙어 있어도 다섯 손가락의 생김과 쓰임은 다르다.
엄지 손가락은 으뜸을 상징한다. 뇌 활동에서 엄지의 역활이 특히 강조된다. 엄지를 잘 사용하면 치매 예방의 효과가 있다한다. 검지는 사물을 가리킬 때 쓰인다. 엄지와 협럭하여 물건을 집을 때 없어서는 않된다.
중지는 키만 멀쑥해 큰 역활이 없는 듯 하지만 손가락 전쳬의 중심과 균형을 잡아준다. 물건을 집을 때, 글씨를 쓸 때 엄지나 검지를 보조하며 돕는다.
무명지 또는 약지라 불리는 네번째 손가락은 보기엔 약해보여도 주로 큰 일에 나선다. 결혼 반지를 끼거나 옛날 독립 운동을 할 때는 거사를 진행하기 전 날 단지를 하며 충성을 맹세하기도 하고 지극한 효자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무명지를 단지하기도 했다. 새끼 손가락은 약속을 걸거나 입술 연지를 바를 때 쓰인다. 손가락 중 제일 귀엽둥이다.
어느 손가락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따질 수 없다. 서로 쓰임이 다르기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손락만 없어도 손 쓰기가 불편할 것이다. 손가락은 각각 독립적이면서 상생관계를 유지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할 때 손은 하나의 유기체로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손의 역활은 지대하다.
태어날 때 우리는 누구나 빈 손으로 태어난다.
일생을 살면서 손을 통해 많은 일을 하고 살아간다. 손은 쓰기에 따라 거룩한 손이 되기도하고 죄인의 손이 되기도 한다.
마리아 테레사나 슈바이처 박사같은 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주변에 꼭 필요한 손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손도 있다. 며칠 전 교사의 손에 살해당한 하늘이 이야기는 끔찍하다못해 섬뜩하다.
나는 어떤 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가? 자문해본다.
선한 영항력을 끼치며 꼭 필요한 손으로 살아왔는지?
나만 위해 손을 쓰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는지?
혹시 내 손으로 상처 준 사람은 없었는지?
소풍을 마치고 그 분 앞에 서는 날 잘 했다 칭찬받는 손으로 돌아가야 하지않을까?
아직 내 손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음에 감사한다. 나도 행복하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 할 수 있는 나의 달란트를 생각해 본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글을 쓰는 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리라. 내 글이 독자들에게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밥먹듯 열심히 글을 쓴다.
생각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손이 따라갈 때 역사가 일어난다.
필요를 기다리는 이웃들에게 먼저 손을 뻗어보자. 손을 움켜 쥘 때보다 손을 펴고 나눌 때 세상은 좀더 따뜻해지고 살만한 세상이 된다.
작은 배려와 나눔부터 몸에 익혀보자.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자. 절로 삶이 행복해진다.
다시 손을 들여다 본다. 손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수고로웠던 손에 감사하며 듬뿍 크림을 발라준다.
휴식시간 작은 나눔을 위해 따끈한 잎새삼 차와 천혜항 몇 개 챙겨넣고 파크장으로 향한다.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꼬부랑길 또르르 구르는 나뭇잎새의 웃음 소리마져 정겨운 한 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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