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값
조 은 미
서울 생활 정리하고 전원 생활에 터 박은지도 어느새 1년 반이 지났다. 도시의 편리함이 인에 박혀 조금은 불편한 환경이 고향이라는 프리미엄에 묻혀 결이 쉬 삭아 그런지 그닥 어려운 줄 모르고 여기가 좋사오니 안주하며 유유자적하게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도시의 공기가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오늘은 강동 온누리교회 권사회 월례회로 모이는 날이다. 설레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버스가 더디게 느껴진다.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마음이 먼저 달린다.
주일마다 매주 예배 드리러 가지는 못하지만 권사라는 이름 값은 해야 도리인 것 같아 월례회나 수련회 때는 참석하여 자리를 지키려 노력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반갑다. 먼데서 왔다고 특별히 환영해주는 환대가 고맙다. 어떤 모임보다 따뜻하고 푸근하다. 아름다운 데코에 감동한다. 과일 하나, 식사 하나에도 정성이 묻어난다. 임원진들의 수고에 감사한다.
이처럼 배려깊고 따사롭고 사랑으로 엮여지는 모임이 또 있을까?
권사회는 교회의 어머니와 같다. 자애와 사랑으로 손길이 필요한 곳에 보이지 않는 후원과 기도로 교회 구석구석 온기가 흐르도록 돕는 역활을 감당해야하는 조직이다.
새삼 권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 역활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돌아본다. 이름에 걸맞는 값을 하며 이름답게 사는 일은 삶의 품격을 세워가는 중요한 가치를 이루는 일이다.
가정에서는 아버지, 엄마, 남편, 아내, 아들, 딸, 시아버지, 시어머니, 며느리 , 시누, 올케, 형, 형수, 동서, 삼촌, 고모, 이모 등등 괸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각 이름마다 주어진 역활과 책임이 있다.
사회에서는 맡은 직무의 경중에 따라 직위가 주어 진다. 어디서나 이름에 걸맞게 이름값을 하며 자기 역활에 충실할 때 건강한 인간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름다움을 포기할 때 우리의 삶은 메마르고 갈등을 일으키며 거칠어진다. 이름값을 못해 관계가 어긋날 때 가족간에도 미움과 증오로 살벌해지기까지 한다. 가끔 존속 살해나 유기등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어느 때보다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하는 인간적 책임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더우기 사회 지도자로서 이름 값을 못할 때 대중이 당하는 고통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일은 개인을 파멸시킬 뿐 아니라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범죄로 이어진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 속에 직면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 속에 우리 모두가 각자 있는 자리에서 이름값을 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더 성숙하고 밝고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살아볼만 가치 있는 사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남은 날들을 이름 값을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가는 날들로 살아가기 소망한다.
사랑으로 충만한 따스함을 안고 돌아 오는 버스 안이 느긋하고 편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