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멈춤의 여유
조 은 미
흔한 말로 백수가 과로사 한다던가
분명히 가정주부가 내 공식 직함이련만 정작 주업은 작파하고 뭐가 그리 바쁜지 고향에 작은 집 하나 돌아보는 것도 좀처럼 짬이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꼭 가야되는 지인의 결혼식도 대신 인사를 부탁하고 시골집을 향한다.
어느새 빨간 양귀비가 눈웃음 치고 산수국도 수줍은 흰 미소를 머금었다
오랜만에 오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여기저기 손을 달라는 일거리들이 쉴 새 없이 기다린다.
마당에 풀도 대충 뽑고 몰라보게 웃자란 감자 싹도 따주고 가뭄에 목이 타는 나무에 물도 주고 이웃집에서 받아준 꽃씨도 땅을 파 일구고 자리를 잡아 뿌려준다
저녁이 겨워서야 산을 마주하고 앉는다
온통 초록 싱그러움이 가슴에 들어찬다.
팽팽하게 조였던 일상의 시간들을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아련한 그리움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대상도 없는 따스함들을 품느라 가슴은 골이 깊어진다.
넋놓고 앉아서 내 속의 불순물들을 비워내는 시간!
우선 멈춤의 여유 안에 나를 내려놓는다.
공간을 차지하는 대상이 없어 잔잔히 찰렁거리는 외로움도 달달하게 즐기며 온통 감싸는 평화와 안식에 영혼을 맡기고 고요함 속에 함몰한다.
내가 애써 가꾸지 않아도 토마토, 고추,가지 상추,수박 참외 하다못해 이름 모를 풀 까지도 제나름대로 제 길을 잘 가고 있다.
자연이 주는 충만한 기쁨은 지친 영혼에 힐링을 준다
자연에 서면 순리에 순응하는 여유와 조바심 쳐지는 기다림까지도 넉넉한 마음이 된다
오늘 뿌린 꽃씨들이 생명의 숨소리를 토하며 세상에 얼굴를 내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날을 기대한다.
흔들의자에서 속삭이는 바람의 밀어에 귀기울이며 느림이 주는 평안에 감사한다 .
해도 쉬 었다 가는지 아직도 밤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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