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별 연습

조은미시인 2019. 4. 8. 07:25

 

 

 

 

 

이별 연습

조 은 미

 

아버지께서 얼마 전까지도 정정 하셨는데 90 들어서시며 갑자기 현저하게 팔다리 근육이 빠지시고 실내에서도 보행이 불편 하시니 자주 집을 비우게 되는 현실에 집에서 모시기는 한계치에 이른것 같다.

 

아버지 스스로도 낮에 혼자 계시는게 불안해하셔서 여러날 고민하고 이 곳 저 곳 답사 끝에 마음에 드는 요양윈을 찾아 모시기로 결단 한다

 

무남독녀 외동 딸이라 퇴직하신 63세 이후 함께 모시고 산 27년을 마무리 하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언제나 멋지고 나의 자랑이셨던 아버지

초등학교 시절엔 군인 장교시라 찝차타고 학교에 오셔서 건빵이라도 선물로 나눠주면 나를 모두 부러워 하고 덕분에 내 어깨가 얼마나 우쭐했었는지!

중고교시절엔 친구들에게 멋진 오빠 있다고 소문도 나고

결혼식 날은 아버지를 신랑으로 착각하고 신랑이 어쩌면 신부하고 저리 닮았어? 라는 말을 듣기도 했었는데

인자하시고 부드럽고 긍정적인 성픔으로 인해 어디에 계시든 늘 주변 분들에게 존경받고 사랑을 받으셨는데 !

6,25 참전 용사로 포철 창립 멤버로 교회 장로님으로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셨는데 작년 출판기념회 때만 해도 정정하신 몸으로 축가를

불러주셔서 하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감동 시켜 주셨는데 어느새 요양원 신세를 지실만큼 육체가 쇠하시고 이제 작은 트렁크 하나가 당신 마지막 삶을 지키는 길동무가 된다.

 

새 속옷과 갈아 입을 몇벌 옷을 챙기며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한다.

좋아하시는 해물탕을 정성스레 끓여

집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 식탁 앞에서 둘이 손잡고 감사기도를 드리며 오붓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버지와 기념 사진 셀카도 찍는다.

"아들도 없는 내가 네덕에 편히 잘 살았다.

고맙고 애쎘다" 시며 손을 잡으신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아버지셔서 제가 더 고맙고 행복했어요.

죄송해요 끝까지 모시지 못해서

자주 찾아뵐께요."

이제 긴 이별 연습의 시작 앞에 선다.

 

일산에 있는 온누리 요양원에 도착하니 윈장님과 요양사님께서 손수 주차장 까지 마중해주시고 트렁크도 옮겨주신다.

얼마나 친절하시던지!

마침 점심시간이라 바로 나오는 점심식사가 깔끔하고 정갈 하다.

음식도 아버지 입맛에 맞으시는지 맛나게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신다.

거실에 햇볕이 환하고 같은 병실의 환우분도 이야기가 통하시는 정상인이라 덜 외로우실 것 같다.

요양사분들도 모두 친절 하시고 가족같은 분위기에 한 편 마음이 놓이기도 하지만 가슴 깊이 아리고 서운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옷장을 정리해드리고 몆시간 함께 하며 마음을 안정 시켜드린 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아이 떼어놓고 돌아서는 에미의 심정 이 되어 요양사님들께 잘 부탁드린다 당부당부 하며 돌아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 하게 하시고 늘 동행하시며

나머지 아버지 인생을 평인히 지켜주시고 강건하게 해주시옵소서."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며

이 곳이 평안한 아버지의 안식처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감사하며  (0) 2019.04.11
봄이 되던 날  (0) 2019.04.09
생일 축하  (0) 2019.04.03
우렁각시  (0) 2019.03.31
개나리 꽃그늘에서  (0) 201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