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잊어버린 자화상

조은미시인 2020. 1. 13. 21:31

 

 

 

 

 

 

 

잊어버린 자회상

조 은 미

 

시골의 새벽은 잠귀가 밝다.

5시가 좀 넘으니 어느새 어슴프레 동이 터 온다.

풀어 놓았던 정신을 추스리며

다시 시간 속에 나를 묶는다.

 

서울 집에 가는 길에 금곡의 아버지께 들리고 오후엔 대학동창들과의 모임이 있어 집안 단도리를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1월1일 찾아뵙고 감기 때문에 못찾아뵙다 이번엔 좀 뜸이 길어져 거의 2 주일만에 찾아뵙는다.

많이 기디리셨던 듯 반갑게 맞으신다.

방금 목욕하신 끝이라 그런지 신수가 훤해보이시고 표정도 밝으셔서 일단 안심이 된다.

 

잡숫는 거라곤 가져간 딸기 한 알 드시는게 고작이시다.

다행히 곧이어 점심 식사로 나온 미음은 한 수저도 남김없이 다 비우신다.

"아버지 얼굴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래?"

"얼굴을 본적이 없으니 좋아졌단들 알 수가 있나? "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 누워만 계시니 근 10개월이 넘는 동안 거울을 한 번도 보실 일이 없으셨겠구나.

난 하루에 수도 없이 들여다보는 거울을 왜 아버지는 거울을 보고싶어 하실 거란 생각조차 못했는지!

얼른 콤팩트에 붙어있는거울을 꺼내 보여드린다.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거울 본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내 얼굴도 잊어버렸어"

한참을 들여다보시며 미소를 지으신다.

그 미소가 왜 그리 애잔해보이는지

가슴이 뭉클 내려 앉는다.

 

어찌 잊고 사시는게 당신 얼굴 뿐일까?

꼼짹도 못하시고 누워 계시니

아버진 아무 것도 필요한 게 없으시다고 너무냐 당연히 생각해욌던 우둔함!

도무지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다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주민등록 번호 하나도 메모 없이는 제대로 암기하지 못한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필요에 이리도 무심했었다니!

자책으로가슴이 에인다.

 

조용히 하모카로 찬송가를 불어드린다.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시니 병원에 오신 뒤로 땅을 밟이 본 적이 없으신 아버지!

아무 것도 당신 의지대로 못하시면서 정신은 맑아 더 고통스러우실텐데도 여전히 밝은 표정을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

그 힘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마도 신앙의 힘이 아닐까!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긍정의 힘이 늘 나를 세우는 것 같다.

아 아버지 내 아버지

그런 당신이 제 아버지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필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다짐하며

병원문를 나선다

"조심해서 가거라"

꼭 쥐어주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손끝의 감촉이 온몸에 따사롭게 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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