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의 타협
조 은 미
상추 10대 남짓 심은 게 하루 자고나면 얼마나 쑥쑥 크는지 다 제 밭의 상추도 넘치고 처지는 터라 누구 줘야 반가워할 사람도 없고 키운 정성이 아까워 끼니 마다 상추를 먹어대니 눈뜨고 앉으면 꼬박꼬박 졸음이 쏟아진다. 덕분에 초저녁 잠 설치면 왠수스럽게 안오던 잠이 눈 붙였다 뜨면 아침이니 신기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잔들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잠 오면 낮잠을 즐기면 그뿐이련만 이따금 한 두마리 파리 녀석이 종아리며 팔에 내려앉는 통에 이 녀석과 한판 싱갱이를 하다보면 오던 잠도 어느새 다 달아나 버린다.
일어나 파리채로라도 후려치려하면 얼마나 빠른지 잽싸게 내달아 번번히 약만 올리고 헛팔질한 나만 애닳아 한다.
아니 근데 요녀석 말하는 꼬라지 좀보소.
정말 듣고 있자니 이녀석은 해충이라는 뿌리 깊은 내 가치관에 혼란이 오고 정말 내가 이녀석과 이리 진 빼고 싸워야하나 싶어지니 세상이 달라지기는 했는가 싶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뒷간이 있어 내 다리에 몹쓸 더러운 것을 묻히고 다닐 일이 있나 냉장고에 다 들어간 음식에 내려 앉기를 하나 그렇다고 모기 처럼 피를 빠는 것도 아니고 이 넓은 집 혼자 쓰는데 한 쪽 벽 귀퉁이 빌려 가만히 붙어 얌전히 날개 접고 쉴 뿐이고 자는 얼굴이 평안해보여 잠깐 내려앉아 그저 훔쳐볼 뿐인데 고것도 못 참아주는 아량을 야속해한다.
나를 꼭 그리 때려잡아야하는 정당한 이유를 대라나?
이 녀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도무지 그럴듯한 반론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 네 말대로 시대가 달라졌어.
몇 십년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사실이 어느 날
부터 거짓으로 둔갑 되어지는 사례가 한 두 건이 아니니 할 말이 없긴 하다.
하다하다 6ㆍ25도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라고 버젓이 가르치는 선생도 있다니 요즘은 배가 산으로도 가는지!
파리가 해충인가?
지금까지 파리가 해충이라고 믿어왔던 내 확신에도 스스로가 긴가민가 아리송해진다.
내가 이 녀석과 이렇게 끼지 신경전을 하며 대치할 필요가 있는지?
어느새 이 녀석의 발칙한 논리에 밀려 타협을 하고 있다.
그래 그렇더라도 제발 잠잘 때 나를 건드리지 말고 내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거라. 금지 구역 침범 때는 더는 못 참는다.
동거는 허용해도 동침은 절대 용납 못한다.
으름장을 놓아보지만
나보다 잽싸게 나는 놈을 어찌 당하랴.
젊었을 때는 파리채로 때리기만 하면
백발백중 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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