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장마의 끝

조은미시인 2020. 8. 27. 07:18











장마의 끝
조 은 미

정부에서 여행비를 지원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친구들 끼리 제주도라도 가자고 작당하며 모처럼 코로나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는가 했더니 그 설레임도 잠시 꼬리 잘린 히드라가 재생하듯 코로나 유령은 다시 살아나 일상을 목죄어 온다.

온통 뉴스마다 코로나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서로 네 탓 책임 떠넘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우린 또 다시 코로나의 볼모가 되어 손발이 묶인채 고립 무원의 수용소에 갇혀 모든 관계의 고리를 끊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공공의 이익에 개인의 자유가 함몰 중이다.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견뎌내야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의무이기에 묵묵히 받아들이며 강제된 자유 속에 모처럼의 여유를 건져 올린다.

유례 없는 장마가 훑고간 뜨락 여기 저기 제 사상 만난 듯 웃자란 풀들과 쓰러진 화초들이 성클한 몰골을 드러낸다.
온통 잔디밭을 점령한 불한당들이 위협적으로 맞짱 뜨자고 덤빈다
며칠 해가 나는 틈틈이 작정하고 맞붙어 온 몸이 물구렁이 되도록 한판 격전을 벌리고 나니 제법 꼴을 갖추고 제 모습을 찾는다.
잔당들이 아직 분을 못삭이고 있지만 일단은 판정승으로 마무리 한다.

장마에 다 스러저 녹아 없어진 줄 알았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오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뜨락은 다시 화사한 활기를 되찾는다.
뿌리가 살아 장마에도 살아 남아준 생명에 경의를 표한다.
함초롬히 뜨락을 지키는 효도에 위로를 받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국민 모두 자가격리의 어려운 시기 스스로 주변의 보이지 않던 행복을 찾아가며 모쪼록 건강하게 견뎌내시길
장마가 지나면 반드시 쨍하고 햇볕들 날 있고 뿌리가 죽지 않으면 다시 꽃이 피는 자연의 순리 앞에 겸허해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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