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태풍 하이선의 경고가 공포스러운 폭풍 전야의 정적 가운데 비교적 조용히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우산을 받쳐들고 늘 하던 대로 동네 둘레길을 걸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 저녁 5바퀴씩 돌자는 스스로의 약속에 묶여 습관처럼 돌다보니 뱃살도 조금 홀쭉해지고 종아리 근욱도 제법 단단해지고 다리에도 힘이 붙는 것 같다.
우산을 쓰고 빗 속을 걷는 것도 꾀 낭만이 느껴진다.
뺨에 스치는 빗방울도 빨간 장화 끝에 채이는 빗물 소리도 손에 들려 따라오는 음악소리와 어울려 촉촉히 가슴에 스며든다.
빗 속에 지킨 자신과의 약속을 대견스러워하며 운동을 마치고 들어와 빗방울 한껏 머금은 뜨락의 다알리아와 끝물 장미, 여전히 울타리를 지키고 선 봉선화의 애잔함에 마음이 젖는다.
하모니카로 꽃밭에서를 불어본다.
찰랑찰랑 차오르는 그리움이 안개처럼 피어 오르며 그리운 이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모두들 보고 싶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단절 속에 어느새 혼자 즐기는 법을 터득하며 익숙해진다.
시장기를 느끼며 냉장고에 딩굴던 오징어 채를 꺼내 맛나게 밥도둑 변신을 시도한다.
오징어채 200g 한 봉지에 소주 2 큰 술 넣고 조물거려 렌지에 1분 돌리고 난 후 마요네즈 2스푼 정도 넣고 버무려 놓는다.
팬에 식용유, 고추장, 고추가루, 설탕, 매실청, 간장, 마늘 두톨 찧어 넣고 물을 조금 부은 후 양념이 잘 섞이도록 숟갈로 저어가며 중간 불에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마요네즈 버무린 오징어 채를 넣고 뜨거울 때 조물조물 무쳐 양념이 고루 배면 다시 약불에 슬쩍 빠르게 볶아주면서 물엿과 참기름 한 큰 술씩넣고 통깨 슬슬 뿌려주면 진짜 부들거리며 맛난 오징어 채가 완성된다.
따끈하게 갓 지은 하얀 햅쌀 이밥에
반드르 윤기나는 오징어채볶음 한 젓가락씩 척척 얹어 먹으니 얼마나 맛난지!
양념이 서로 어울어져 물이 든 고운 빛깔하며 각기 다른 향과 맛이 한데 얼려 내는 오묘한 깊은 맛이 냉장고에서 딱딱하게 굳은 오징어채를 환상적으로 변모시킨다.
우리 삶도 그런 것 아닐까?
서로 얼려 어우러지며 더 고운 빛깔로 더 깊은 맛으로 변화하며 모서리가 다듬어지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면서 서로 있음에 감사하며 같은 눈높이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세워져 분열과 갈등과 배척의 살의에서 해방되어 서로 윈윈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본다.
이제는 내펀 네편 편가르기에 서서히 지쳐가고 신물이 난다.
보고 싶은 이들! 코로나 전국민 자가격리에서 벗어나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