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절친과 신안의 환상적 보라섬 여행을 예약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설렌다.
보라색 원피스와 운동화까지 일습을 새로 장만하고 기다렸는데 예약 인원이 우리 둘뿐이라 여행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얼마나 실망이 되던지!
그래도 이왕 계획한 나들이니 꿩 대신 닭이라고 인제군 점봉산의 곰배령 확정 상품이 있어 무조건 따라나서기로 한다.
곰배령은 귀둔리 곰배 마을에서 진동리 설피 마을로 넘어가는 해발1164 m의 고개 인데 고개 마루에 이르면 5만여평의 광활한 평원에 각종 야생화의 천상낙원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다. 곰배령은 곰이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별명이란다.점봉산 입구에서 곰배령까지 오르는 왕복 10여 km 되는 산길은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로 울울창창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군데군데 수수하고 사랑스러운 야생화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이름도 정겨운 산괴불주머니, 양지꽃, 피나물, 미나리 아제비, 동의나물 등의 화사한 노란 꽃들이 입구에서 반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중간 중간 홀아비 바람꽃, 개별꽃, 산딸기, 미나리냉이등 작고 사랑스러운 하얀 꽃들이 눈길을 붙잡고 위로 올라가면 현호색, 얼레지 등 보라색의 새색시 같은 꽃들도 발길을 멈추게한다.
곰배령에는 850 여종의 각종 식물이 서식하며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우는 야생화의 보고란다.
2시간여의 산길이 군데군데 다소곳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야생화 군락을 만나는 기쁨으로 지루하지가 않다.
사진도 찍고 쉬엄쉬엄 걷다보면 힘들 즈음 천상의 화원에 이르는 돌계단을 만나게된다. 돌계단을 올라가면 곰이 벌링 누워있는 형상의 툭트인 평원에 각양 야생화가 곰의 배안에 가득 피어 있는 정겨움에 마음이 평온해지고 푸근해진다.
화려하지도 난하지도 않은 그냥 수수한 시골 아낙의 매무새에 고향을 찾은 듯 편안해진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곰의 뱃속에는 노란 동의나물과 앙지 꽃, 피나물 꽃이 한창이다.
잔디밭에 더부살이로 태어나 잡초로 천대 받던 꽃들이 여기서는 제 이름 그대로 사랑스러운 존재로 귀하게 대접 받는 것을 보며 사람도 설 사리에 제대로 서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나이들수록 빠질 자리 낄 자리 구분하여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사람으로 서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넉넉한 줄 알고 여유있게 올라갔던 길이 막상 내려오며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 2시 20분까지 내려오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우리 때문에 기다릴 생각을 하니 잠시 쉬지도 못하고 산길을 급히 내려온다.
시간 안배를 잘 했어야했는데.
후회해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2시간여 산길을 숨이 턱에 닿을 듯 힘에 부치게 내닫는 걸음에 다리까지 뻣뻣해진다.
그래도 남에게 피해줄까 염려되는 마음은 젖 먹던 힘까지 내게한다.
다행히 10 여분 남짓 늦게 버스에 도착한다.
얼마나 면구스럽고 미안하던지! 이런 땐 나이 먹은 핑계가 다소의 변명으로 용인되는 넉넉함이 고맙기 그지없다 점심 먹는 식당에서 친구가 엽럽하게 막걸리 쏘는 걸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한다.
점심 때가 겨워 출출하던 판에 정갈하고 맛깔 스러운 산나물 비빔밥은 얼마나 맛나던지!
시간을 넉넉히 갖고 다시 한 번 찾는다면 좀 더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멋진 여행지로 추천 리스트에 올린다.
시간이 축박해 난생 처음 날쌘돌이가 되어 내 한계를 뛰어넘어 달린 산행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기억되겠지만 친구와의 오붓한 동행도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것 같다.
마음 한자락 곰배령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가슴에 넉넉함이 들어차고 차창에는 노을마저 곱게 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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