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 하우스
조 은 미
허리 띠 졸라매고 몇 번 이사한 끝에 본 댁 마님 자리잡아 앉히고나니 이젠 허리도 펼만 하고 권태기도 슬슬 찾아와 고향집 핑계 삼아 참한 작은 댁 하나 들여앉혀 몸도 마음도 호강해볼 요량에 여기저기 덧보다가 마음에도 얼추맞고 콧대도 세지 않아 같이 데리고 살기 만만할 것 같아 덜컥 계약하고 제법 모양새 갖추느라 대충 주머니돈 풀어 살림을 차린다.
돈 들여 갖추느라면 욕심이 한이 있을까만 그래도 큰 돈 안들이고 새살림 채리니 새정이 무섭긴 하다.
본댁을 품고 누웠어도 마음은 어느새 삼삼하게 어른거리는 새댁의 자태에 툭하면 찾아와 사랑을 쏟으니 정은 아는지 마음 주는 만큼 점점 더 자태가 고와 가니 보는 눈 빛도 그윽함을 더해간다. 별 투정 없이 여러날 묵어가도 군말 않고 지켜봐 주는 본댁의 마음을 헤이리니 미안키는 하다.
두 여자 거느리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어디 쉬운 노릇인가?
그런데 시앗은 시앗인지 요 작은 댁 성정이 불같아 조금만 정이 멀어지면 금새 샐쭉 돌아서 온 몸에 뿔이 나 어지간한 체력에는 어르고 달래는 게 감당하기 어렵지만 살살 며칠 다독이면 어느새 풀어져 헤헤거리니 그 살가운 미소에 녹아 그녀를 안고 있는 가슴은 힘든 것을 다 잊게 한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되는 걸까?
이제 내 나이도 칠십을 넘기고 나니 그 놀음도 시들하고 오는 걸음도 더뎌진다.
몇 주만에 벼르다 들르니 어느새 한 성깔 부리고 있다.
온 마당이 풀천지로 성클하다.
작은 댁 다독 거리려 중무장하고 나섰다 그냥 손을 거둔다.
노란 괭이풀과 고들삐 꽃 하얀 주름잎 꽃이 나부작 엎드리고 있다.
앙증맞고 귀엽다.
그래 눈 질끈 감고 잡초도 꽃으로 보니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두어라 찬바람 불면 저도 절로 스러질 텐데.
잡초를 꽃으로 사랑하기로 마음 먹으니 이리 넉넉한 마음이 된다.
창가로 시윈한 바람이 이마를 간질인다.
소나무에 짹짹 거리는 참새 소리도 귀엽다.
상추며 쑥갓 갖은 쌈채소 흐드러지게 한바구니 뜯어 흐르는 물에 씻어 놓는다.
꽃필 때는 예쁘지만 지는 때 지저분한 것도 자연의 이치니 꽃잔디 진 자리 그냥 봐주는 넉넉함으로 느긋하게 작은 댁과 하나 되어 쇼파에서 뒹군다.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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