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청도 울산 그 길에서

조은미시인 2021. 4. 30. 13:59

























청도 울산 그 길에서
조 은 미

4월의 연두빛 신록이 눈 부시다.
신부를 맞는 새신랑처럼 마음이 설렌다
고단했던 마음을 데리고 1박 2일 청도, 울산 버스 투어에 나선다.
마스크에 가려졌던 코에 상큼한 바람을 불어넣으니 막혔던 숨구멍도 열린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스르르 풀린다
오늘 따라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유리알 처럼 투명하다
잠실대교 윤슬이 반짝이는 한강 위로
잔잔한 평화가 자맥질 한다
좀 일찍 도착한 잠실 경기장 버스 주차장엔 아직 아무도 없다
여유있는 시간을 느긋하게 즐긴다.
주변 공원에 화사한 튤립이 반긴다
잘 가꿔진 꽃잔듸 화단에 어울리지 않게 이방인 같은 풀들이 꽃으로 대접 받고 누윘다.
무리지어 온통 초록으로 덮이니 그 기세에 눌린 꽃들이 볼멘 소리를 안으로 삼키며 슬몃 자리를 내어준다.
늘 퇴출의 위기에 살아남기 위해 머리띠 두르고 그악스럽게 투쟁하더니 그예 승복을 받아냈는지 꽃밭의 기존 질서를 깨고 화단의 반을 버젓이 차지 하고 있는 품이 꾀나 호기로워 보인다. 세상이 달라지니 풀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도 오는갑다.
너무 드센 풀에 밀려 꽃들이 종당엔 제 자리까지 다 풀에게 내어주고 밀려날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드디어 도착한 버스.
코로나의 위세는 어디서건 위풍 당당하다.
혈렁한 버스에 드문드문 거리두기 간격이 여유롭다.
아침 일찍 버스 타면 의례 제공 되던 맛난 찰밥도 사라지고 버스 내 취식도 금지되어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떠나는 것은 즐겁다.
여행은 늘 단단하게 굳은 마음 밭을 기경하게 만든다.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자연과 하나 되어 속살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마음에 걸리던 자갈도 걸러지고 단단했던 흙덩이도 부드러워져 한동안 새 활력을 얻게 된다

차창에 정신줄을 걸쳐놓고 멍 때리며 창 밖을 바라본다.
흐르는 풍경 따라 가슴에 고여있던 찌끼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 맴을 돈다.
이렇게 비워내는 시간들이 가끔 필요한 것 같다.
어느새 금호강을 지난다.
햇살이 내려 앉은 강물이 보석 처럼 반짝인다.
내가 붙잡고 왔던 것들은 정말 붙잡을만 한 것들 이었나?
가끔 나를 넘어지게 했던 돌 뿌리에 다시는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단도리는 잘 했는가?
아직도 헐렁한 잣대를 들이대며 내 합리화의 그물을 치고 빠져나가려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을 향해 늘 꼿꼿하게 서기가 생각처럼쉽지가 않다.
여전히 넘어지지 않을 데서 넘어지는 나약함을 반복하고 있다.

5시간 반을 달려 미나리로 유명한 청도에 닿는다. 정이삭 감독이 만든 미나리란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면서 우리에게 더 특별한 의미로 닥아오는 미나리!
때마침 TV 에서 윤여정의 우리나라 첫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며 흘러나와 모처럼 신바람나게 한다.
몸의 중금속 배출에 특별히 탁월하다는 미나리의 효능이 각광 받으면서 미나리의 주가를 높이고 있다. 막 자란 부드러운 미나리의 초록 생기를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에 된장 한술 얹어 씹으니 미나리 향의 상큼함과 삼겹살의 고소함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풍미가 입속에 환상으로 녹아든다.

점심 후 신라 진흥왕 21년에 초창 하여 여러번 중수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오는 청도 고찰 운문사에 들른다.
입구의 세월을 이고 있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아름드리 쳐진 소나무가 넙죽 업드려 객을 맞는다.
고색 창연한 만장루의 단청이 고찰의 품위를 지키고 있고 뒷뜰엔 모진 풍상을 겪은 석탑이 오랜 염원을 가슴에 묻고 말없이 서 있다. 하얀 꽃산딸이 정갈하게 웃고 있는 운문사를 뒤로하고 버스는 다음 목적지인 와인동굴을 향해 달린다

4월의 들판은 생기로 가득하다.
내 몸에도 초록 생기가 배어든다.
한참을 달려 경부선 지나던 터널을 개조해 빈티지 풍의 멋진 공간으로 재 탄생시킨 와인 동굴앞에 선다.
낭만적이고 신비함이 감돈다.
사람의 창의력은 참 많은 역사를 이룬다.
재 창조를 향한 멋진 아이디어란 생각이 든다.

와인 동굴을 관람한 후 버스는 울산을 향해 달린다.
우리나라 조선과 자동차 공업의 메카인 울산항! 끝도 없이 펼쳐진 자동차 선적장, 우뚝 솟은 우리 자존심의 상징인 타워크레인의 위용을 보며 가슴이 벅차 오른다.

황금 용 조각상이 버티고 있는 대왕암 주차장에 이르러 해송 숲을 따라 10 여분 정도 걷다 보면 툭 트인 바다에 날개 달린 용처럼 곧 하늘로 날아 오늘 기세로 드러누운 대왕암과 맞닥드린다. 그 성스럽고 장엄한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다. 바다는 모든 걸 품는다. 잠시 나를 바다에 묻고 몰아 지경에 빠진다.
감동을 가슴에 안고 일산 해변에 도착하여 부드럽게 씹히는 생선구이로 바다를 입안에 녹이며 맛깔스러운 저녁으로 입이 호사를 누린다.
오후 8 시밖에 안되었는데 그 번화한 거리가 죽은 도시 처럼 적막에 휩싸인다.
여기서도 코로나 위기를 실감하며 대책없이 무너지는 일상에 가슴이 아려온다.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도착한 4성급 현대 호텔.
잠 자리가 편안하니 마음도 느긋하고 넉넉해진다.하루의 피로를 따끈한 샤워의 물줄기로 씻어 내린다.
도무지 10 만원 여행비 지불하고 이리 가성비 높은 호화로운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니! 횡포 부리는 코로나를 원망하면서 코로나 덕을 톡톡히 보는 아이러니에
인생은 늘 보이는게 전부가 아닌 또 다른 이면과 반전이 있음을 깨닫는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근사한 조식 부페에 또 한 번 입이 귀에 걸리는 행복을 맛보며 울산 전망대에 오른다.
멀리 울산대교가 아삼하고 수도 없이 반짝이는 자동차가 별이 되어 내려앉았다.
점 ,점 떠 있는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발아래 장관을 이룬다.

바다를 품고 있는 천혜의 관광자윈과
역동하는 한국의 숨결을 한 눈에 담고 편백 나무 숲으로 향한다.
만석골 저수지의 요람같은 안온함을 감싸고 있는 울산 어울길을 굽이굽이 돌아 천마산 편백 나무숲에 들어선다. 은은한 편백향이 코끝을 감돈다.
좌불이 되어 숲에 들어 앉아 속세를 잊는다. 온전한 힐링 안에 잠시 머문다.
.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대숲 십리길에 이른다.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울울창창 뻗어 있는 대숲이 하늘을 가린다.
마디마디 옹이 진 삶을 바람에 비워내며 그래도 한점 부끄럼없이 올곧게 하늘을 향해 든든히 자신을 지켜낸 대숲의 푸르름에 숙연해진다.
울산 시민의 젖줄인 태화강을 따라 십리나 이어진 대숲길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국가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835,452 평방 미터의 부지에 6개의 주제를 가지고 20개 이상의 테마 공원을
조성한 태화강 국가 정원은 그 규모도 어아어마하지만 죽음의 강을 생명의 강으로 살러낸 울산 시민들의 노력과 기적에 고개가 숙으려 진다.
강변을 따라 피어있는 유채꽃은 얼마나
서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근처의 황금코다리찜에서 맛본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코다리찜과 함께 나온 씨레기의 미각이 잊을 수 없는 항수로 자리잡을 것 같다.

볼거리 먹을거리 잠자리가 편안했던 최고의 여행!
감동을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이 뿌듯하다
길을 나서면 언제나 길은 많은 물음에 묵묵히 해답을 안겨준다.

여행은 항상 내면을 성숙하게 하고 익어가게 한다
나의 가시를 돌아보고 다시 다시 한번 나를 다독거리며 추스릴 수 있었던 이번 여행에 많은 소득이 있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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