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열무김치 시집 보내는 날

조은미시인 2021. 5. 23. 20:36


열무김치 시집 보내는 날
조 은 미

팔자대로 살겠지 싶은 마음에 제멋대로 뿌려놓은 열무와 얼가리가 그야말로  팔자 대로 싹이 트더니 약 한 번 안쳤는데도 벌레들의 손아귀에서 용케 벗어나  벌써 솎아내기도 때 늦을 만큼 자랐다.
한 이랑  몽땅 뽑으니 큰 고무  다라이로 하나 가득 넘친다.
오늘은 이 녀석들 시집 보낼 매파 노릇으로 하루 종일 분주하다.

일단 깨끗이 뿌리를 잘라내고 다듬어
목욕 재계 부터 시킨다.
팔팔한 성질 머리 부터 죽여야 시집살이 견뎌낼 터 천일염을 켜켜이 뿌려  1 시간 가량 절인다.
김치 담아본 지도 하 오래라  유투브 검색을 하며 조금이라도 맛나게 담아보려 여기저기 귀동냥을 하며 집에 있는 좋다는 재료는 다 꺼내 놓는다.
그런데 유투브 강사 여섯에 다섯은 열무는  아이  다루듯  그저  살랑살랑 조심조심 다루며  씻으라  하는데  제법 독자 수가 많아  꾀 이름이 익은 스님  한 분은 절인 열무를 씻을 때  박박 으깨듯 덖으라고 하신다. 그래야 다 먹을 때까지 무르지가 않는단다.
큰 맘 먹고 안 가본 길이지만 한 번 따라 해보기로 한다.
다시마 육수를 내고 밀가루풀도 쑤어 놓고 식힌다.
양파 한 개, 배 한 개, 국물을 신선하게 한다는 노란 파프리카  한 개, 마늘 적당량, 생강 약간, 밥 한 술 , 무우  약간, 홍고추 열 개 남짓 넣고 같이 믹서에 갈아 생수에 풀고 까나리 액젓으로 간을 맞춘다.  매실 액기스를 반 컵 정도 넣고 쪽파와 양파도 고명으로 썰어 넣고 양념 반은 고추가루 넉넉히 넣고 버무려 열무 김치로 담고  반은 국물을 부어 물김치로 담는다.
국물도 간이 맞아 입에 짝 붙고 버무린 열무 김치도  귀동냥으로 해본 솜씨 치고
정말 연하고 맛있다.
두 통에 나눠 가마 태워 시집 보내는 마음이 흐믓하다.
중매 잘 하면 술이 석 잔 이라는데  정성들여 시집 보냈으니 모쪼록  잘 숙성 하여 보람된 시집살이로 입맛을 즐겁게 하기를 빌어 본다.

'자작 수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눔의 행복  (0) 2021.05.25
잡초의 미학  (0) 2021.05.24
아침의 세레나데  (0) 2021.05.23
세컨 하우스  (0) 2021.05.22
시니어 반란  (0)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