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그 따뜻함 안에서
조 은 미
남도 여행의 행복했던 달콤함이 아직 가시지 않고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묵은 정에 새 정이 얹혀 강화도에서 팬션하는 친구가 미국에서 온 친구 부부를 초청했다. 출국하기 전 마지막 이틀 밤은 강화도에 와서 같이 지내잔다.
서울 시내 호텔에서 묵고 있는 부부를 픽엎해 친구의 살림집이 있는 김포로 향한다.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반갑게 맞아준다. 복어국으로 맛난 점심을 대접 받는다.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점심 후 초지진과 광성보를 돌아본다. 사적 255호인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요새이다.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해병 450명이 20 여척의 배로 침입하여 격전을 벌렸던 곳이다. 화력의 열세로 결국 점령 당해 군사 시설이 모두 파괴되었다. 4년 후인 1875년 일본이 강제적으로 개항시키기 위해 운효호 사건을 일으켜 초지진 포대가 완전히 파괴된 것을 1973년 초지진의 돈대만 복구하여 오늘에 이른다. 포좌 3개, 총좌 100 여개, 조선 시대 실제 사용하던 대포 1문이 전시되어 있다. 국력이 약해 침력을 당했던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강력한 국방력과 안보의 중요성을 역사 현장을 보고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는다.
광성보는 1656년 설치되어 1679년에 돈대를 축조했다.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장군의 군대가 치열하게 백병전을 벌였던 곳이다. 신무기에 맞서 열세를 면치 못했으나 마지막 까지 맨주먹으로 항전하다 장군과 군사들이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이 전투 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에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 무명 용사들의 묘, 어재연 장군의 쌍총비각등이 복원되어 사적 227호로 지정되었다. 해변 쪽으로 펼쳐진 넓은 휴식 공간은 관광지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낙엽 쌓인 고즈녁한 오솔길을 걸으며 낙조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저녁엔 오랜만에 맛난 돼지갈비로 포식하고 해변도로를 드라이브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장화리에 있는 아담한 팬션인 빈티지 박스는 주인장의 성격만큼이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예술 감각이 묻어나는 실내장식으로 젊은이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주중에도 성시를 이루는 방을 2개씩이나 비워주는 배려에 눈물나게 고맙고 감동이다.
다음 날 아침 해변길을 산책한 후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는 전통 맛집에서 순두부 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담백하고 고소한 순두부에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맛이라니. 토속적인 밑반찬도 맛깔스러워 입에 붙는다.
식사 후 삼국 시대 고찰로 길상면에 위치한 전등사를 찾았다.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전해진다. 전등사 철종,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목조지존보살삼존상, 시왕상등 많은 유물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 되고 있다. 경내에는 거대한 청동 수조와 옥등 , 수령이 600년이나 된다는 은행 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다. 아직도 가을이 머물고 있는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 뜨락이 곱다.
삼국시대 고찰인 석모도의 보문사를 들려 민간인 통제 구역인 교동도로 향한다. 전통 시장인 대릉 시장, 교동 읍성, 연산군 사당인 부근당, 교동 향교, 화개사등 강화통인 친구가 여기 저기 안내하는 곳을 따라 역사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도 초라한 연산군 사당은 비감하기까지 했다. 강화도는 자연도 이름답고 볼거리, 먹거리가 풍요로운 고장이다. 어디를 가나 눈과 입이 즐겁다. 뜨끈한 해수탕에서 강행군의 피로를 푼다. 심신이 날아갈 것 같이 개운하다. 시골이라 가게가 일찍 문을 닫는지 저녁 먹을 식당이 마땅치 않다. 다행히 늦게까지 문을 연 경양식 집이 있어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강화 친구 남편과 합류하여 수산 시장을 돌아본 후 싱싱한 꽃게탕으로 조반을 먹는다. 살살 녹는 게 맛의 진수가 느껴지는 맛집이다. 부인 친구를 위해 흔쾌히 주머니를 여는 친구 남편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정겹다. 서로 계산하겠다고 계산대에서 실갱이하는 모습에서도 정이 돋는다. 야박하게 더치 페이를 하지 않더라도 주거니 받거니 상대를 배려하다 보면 거의 비슷하게 쓰는 돈이지만 대접하고 대접 받는 마음이 푸근하고 행복하다. 이것이 우리 한국 사람 특유의 정이고 정서가 아닐까 싶다.
친구 간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부 지간이나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정과 사랑에는 일방 통행이란 없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섭섭하고 서운하여 의가 나고 상처가 된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정도 생기고 관계도 끈끈하게 이어진다. 염치도 체면도 없이 제 것만 아끼는 인색한 사람은 결국 주변에 친구가 다 떠나고 만다.
친구 남편이 농담 중에 미국에서 귀국할 때마다 친구들 집을 돌아가며 신세를 지는 친구가 있었는데 올 때마다 쓴 커피 한 잔 안사고 대접만 받고 가니 결국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고 기피 인물이 되더란 이야야기를 해서 한바탕 웃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친구와 헤어지는 시간이다. 여학교 때 크게 친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서로 마음을 나누다 보니 옛날부터 친했던 친구처럼 정이 들어 헤어지기가 서운했다. 참으로 멋지고 세련된 메너로 모두에게 사랑스런 감동을 남겨주고 떠나는 부부가 곧 보고 싶고 그리워질 것 같다.
미국에 꼭 한번 오라고 신신당부하며 작별을 아쉬워 하는 친구 부부를 김포에서 배웅하며 돌아온다. 인천 공항까지 픽엎해주며 마지막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는 강화 친구 부부의 넉넉한 마음씀이 참 따뜻하고 아름답다. 어느새 내 차 트렁크에 강화 햅쌀 한 자루를 슬그머니 넣어둔 친구의 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난해 제주도 한 달 살이 짝으로 마누라를 말없이 보내주던 강화 친구 남편의 너그러운 마음씀은 익히 아는 터이지만 어딜 가나 손을 꼭 잡고 다니던 미국 친구 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푸근해진다. 시간이 버무려져 정스럽게 익어가는 두 부부를 보며 젊었을 때의 불같은 사랑보다 더 편안하고 그윽한 부부애가 느껴져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정이란 참으로 우리 한국 사람만이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정서인 것 같다.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고 끈끈하고 비합리적이면서도 합리적이다. 정, 그 따뜻함 안에 머물며 행복했던 여행에서 이제 일상으로 돌아온다. 서로 나누었던 정은 오래도록 따사롭고 촉촉하게 가슴을 적시며 삶의 또 다른 의미가 되어 그리워지리라
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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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 전망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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