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조은미시인 2022. 11. 29. 04:55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조 은 미

오랜만에 대학 동기 반창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갈 준비를 하며 벌써 몇 번째 핸드폰을 찾는지 모른다. 금방 손에 들고 있다가도 손만 떠나면 보이지 않아 허둥댄다. 집 전화는 오로지 핸드폰 찾는 용도로만 쓰인다. 그럴 때마다 치매가 진행되는거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스러워진다. 가끔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알던 사람 인데 전화번호를 찾으려면 얼굴만 뱅뱅 돌뿐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때가 많다. 그나마 글이라도 쓰는 순간은 아직 정신이 건재한 것에 안도한다.

서초동 대나무골에서 1시 모임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만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51년 전의 풋풋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나이를 잊는다. 교대 졸업하고 평생 교직에서 근무하며 비슷한 길을 걸어서 더욱 동질감이 느껴지는 친구들, 정답고 소중한 벗들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세월의 간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식탁을 구른다. 맛깔스러운 한정식으로 입도 호사를 한다. 간단한 근황을 소개하고 몇 가지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더스킨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가 마스크팩을 선물로 나눠준다. 친구들 생각해 무겁게 들고와 베푸는 그 후덕함이 고맙다. 해외로 나가는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느라 퍼준 물건이 광고비 들여 선전하지 않는데도 써본 사람의 입소문을 타고 수출까지 하게 되어 사업이 탄탄히 성장 하고 있단다. 사랑은 나눌 수록 더 커지는 신비한 마술이다. 닫힌 마음의 빗장도 열고 병든 영혼도 살리는 묘약이다.

요즘 100세 시대라 하지만 2022년도 인구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인구 51,801,449명 중 80세가 102,370 명, 90세가 16,019명, 99세가 648 명 이다. 70세 까지 생존 확률은 86%, 80세 까지는 30%, 90 세까지는 5%에 지나지 않는다. 80 세까지만 살아도 장수하는 편에 속한다. 앞으로 건강하게 친구 만나고 다닐 날도 80세 정도로 본다면 이런 모임을 몇번이나 할 수 있을까 싶으니 더 소중한 생각이 든다.
자리를 찻집으로 옮겨 한 시간 이상이나 이야기를 나누고도 헤어지는 발걸음은 아쉽고 서운하다. 건강하게 나와서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남은 날이 더 짧은 나이이기에 묵은 인연들이 더 소중하게 생각이든다. 가슴 떨리게 사랑할 수 있을 때 맘껏 사랑하며 살아가자. 멀지 않아 감성이 무뎌지면 좋은 것도 좋은 줄 모르고 무덤덤해지는 날이 쉬이 오지 않을까? 하루 하루 지나는 시간들을 의미있는 날들로 채워가고 싶다. 더 너그러워지고 주변의 필요에도 민감하게 반응 하며 내가 머물던 자리가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살아가자.

내년 5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내일을 내 것으로 붙잡지는 못하지만 모두 건강하게 지내다 만날 수 있기를. 그새 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었다. 기온이 내려간 바깥 날씨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며 산다는 건 이리 따스한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