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 큰 엉, 쇠소깍)
조 은 미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웅크러든다. 제주 서귀포에서 1년간 휴양 삼아 머물고 있는 친구를 보러 가는 날이다. 11시 비행기지만 공항에서 느긋하게 기다릴 요량으로 서둘러 나선다. 김포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따끈한 카페라테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커피를 다 마시도록 뭉게지지 않는 하트 모양의 심장을 가슴에 채운다. 몽글 몽글 따뜻함이 피어난다. 아침부터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친구 모습을 그리며 마음은 더 먼저 제주도로 난다.
오랜만의 비행기 여행이다. 작년 이맘 때 한달 살이 제주도 추억이 새롭다.협재 해변의 시리도록 푸르던 바다빛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활주로를 미끄러져 이륙한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난다. 햇솜을 펼쳐놓은 듯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구름이 몽환 속으로 빠지게 한다. 잠깐 사이 제주 공항에 닿는다. 야자나무 우뚝 선 제주 공항이 외국에라도 온 것 같다.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달린 먼나무 가로수도 이국적이다.
공항에서 한 시간여 버스로 달린다. 낯익은 지명들을 스치며 차창 밖의 초겨울 풍경을 눈에 담는다. 어디를 보나 정겹다. 곳곳에 노랗게 익어가는 귤밭이 풍요롭다. 비석 거리 정류장에 내리니 친구가 반갑게 맞는다. 타지에세 친구를 만나는 기쁨은 특별하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여장을 풀고 정성스레 준비해놓은 비빔밥으로 점심 대접을 받는다. 얼미나 맛나던지. 마침 제주 한달 살이 와있는 또 다른 동창과 합류하여 가까운 남원리 큰 엉 해안 경승지를 돌아 본다. '엉'이란 높은 언덕이란 뜻의 제주 방언이다. 툭 트인 바다와 병풍 처럼 깍아지는 용암의 기괴한 암석이 어울어져 장관을 이룬다. 숲길을 통해 난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한반도 형상의 신기한 풍광과 인디언 추장 얼굴의 바위. 우렁굴등 숨어 있는 비경을 만난다. 바다와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가까이 있는 쇠소깍은 용암이 흘러나와 형성된 게곡으로 효돈천을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큰 소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엣날에는 소둔이라 불렸다. 푸른 옥빛이 도는 물빛이 환상적이다. 태우라는 뗏목을 타고 쇠소깍 구석구석을 돌이 볼 수 있단다. 저녁 늦게 가서 눈요기만 하고 돌아오는 게 아쉬웠다. 여름철에 태우를 타고 돌아보면 정말 낭만적일 것 같다. 어쩜 곳곳에 이렇듯 아름다운 곳들이 숨어 있는지. 이번엔 친구집에서 편히 쉬며 한가롭고 유유자적하게 하루 한두 곳만 놀멍 쉬멍하며 돌아보려한다. 어느 때보다 더 따뜻하고 행복한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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