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워진다는 것은
조은 미
날씨가 눈이라도 쏟아질 듯 흐렸다.
낮에 모임 끝나고 저녁답이 겨워서야 시골집을 향한다. 이런저런 바쁜 이유로 오랜만에 찾는다.
어스름 깊어지는 저녁 해걸음에 이무도 다니지 않는 길. 적막이 내려앉는다.잎 떨군 앙상한 가로수들만 길을 지키고 있다.
굳게 닫힌 대문을 보니 반가움이 앞선다. 시간이 정지된 공간. 오랜만에 오면 풀이 무성해 폐가 같던 성클함이 오히려 안온한 고요로 맞는다. 누렇게 변한 잔디마저 넉넉함을 안고 있다. 잠잠히 기다림이 익어가는 겨울 뜨락은 평화롭다. 진정한 쉼을 누리는 듯 계절이 지나간 순환의 흔적들. 그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목련 꽃눈이 얼을세라 털옷으로 무장하고 숨죽이고 있다.
찬 바람이 도는 썰렁한 거실. 보일러 불을 올리고 벽난로 불도 켠다. 서서히 온기가 돈다. 사람이 집을 채우니 집에 화기가 돈다. 서로의 온기가 어우러져 따스함이 퍼진다. 온전한 힐링 안에 나를 내려놓는다. 가슴에 고향 같은 안온함이 들어찬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평화가 커피 잔에 녹아내린다. 풀하고 싸름할 걱정 없이 모처럼 일에서 해방되어 쉼을 누린다. 몸도 마음도 새로운 활기로 넘친다.
아침 7시가 되어도 아직 해는 기척이 없다. 창문을 여니 새벽 공기가 차다. 모처럼 늘어지게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린다. 달달한 게으름이 너무 좋다.
오래된 식탁 의자를 바꾸는 날이다. 서울에서부터 배달온 기사들이 고맙다. 먼 길에 일찍 나서 아침도 번겼을 것같아 따끈한 커피와 과일, 계란 후라이를 급히 부쳐 대접한다.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 작은 친절에 그리 고마워 하니 오히려 면구스럽다. 새로 바꾼 식탁 의자가 마음에 든다. 은은한 오크 계열의 원목이 탄탄하고 자연스런 색감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집 이웃에 사는 지인의 전화다. 나가는 길에 보니 방금 어떤 차가 건물 화단을 들이받아 파손이 되었다며 사고 차량 운전자를 바꿔준다. 안면이 있는 이웃이었다. 죄송하다며 고쳐놓겠으니 염려 말란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순간적인 실수로 악셀러레이터를 밟았단다. 다친 곳은 없다니 안심이 된다.
급히 서울로 돌아온다. 주차장 입구의 큰 기둥을 받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이만큼에서 더 큰 사고로 번지지 않기가 천만 다행이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음 날 아침 나가보기도 전 벌써 깨끗이 수리한 사진을 보내왔다. 새 것처럼 깜쪽같이 고쳐놓았다. 밖에 나가 보니 사고 흔적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잘 해놓고 갔다.
오래된 것을 새것으로 바꾸고 부서졌던 것을 다시 고쳐놓으니 특별한 감동이 생긴다. 몇 번씩이나 돌아보며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도 그렇게 새로워 질 수 있으면 좋겠다. 육신은 후패하지만 마음은 새롭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수 있다면 내 삶은 늘 생기로 반짝 거릴 것이다. 밭을 기경하듯 마음밭도 기경하며 날로 새로워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