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강낭콩

조은미시인 2022. 12. 15. 07:03


강낭콩
조 은 미

잿빛 하늘이 옥상 위에 걸렸다.  시나브로 싸락눈이 내린다. 비도 함께 내린다. 진눈깨비다. 쌓일 새 없이 눈이 녹는다. 함박 눈이나 펑펑 내려 쌓이면 좋으련만. 진눈깨비 내리는 날은 마음까지 우울하다. 모처럼 할 일 없이 한가해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영화라도 한 편 보러 나갈까 생각하다 진눈깨비 핑게대고 그만 주저 앉는다. 등어리에 자석이라도 붙었는지 소파가 자꾸 끌어당긴다.

점심 때가 겨웠다. 늦은 점심을 준비하러 일어난다.
엊저녁 부터 강낭콩을 물에 불렸다. 불린 강낭콩을 넣고 밥을 짓는다. 콩 익는 구수한 밥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한다. 압력솥 불을 낮추고 뜸을 들인다. 그동안 햄을 넉넉히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끓인다. 압력솥의 김을 빼고 뚜껑을 연다. 밥에서 기름기가 잘잘 흐른다. 뜨거운 김이 나는 밥을 한 공기 소복이 퍼서 담는다. 김치찌개 하나 놓고 먹는 소찬이다. 한 숟갈 떠먹어 본다. 얼큰한 맛이 입에 붙는다. 부드럽게 씹히는 강낭콩의 구수한 맛이 밥맛을 돋운다.

강낭콩을 오래 불렸다 밥을 지으니 밥 맛이 이리 좋은 것을. 엊그제는 급한 김에 바로 넣고 밥을 지었다. 무르지 않아 딱딱한 콩이 이더러 덕보자고 덤벼들어 낭패틀 보았다. 목수가 연장 탓 하듯이  제대로 불리지 않은 강낭콩 탓만 했었다. 무엇이건 다루기 나름이고 하기 나름이다.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사람을 제대로 부릴줄 아는 지도자에게는 사람이 모이고 존경도 따른다. 일도 순리대로 풀어야지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매서 쓸 수는 없다. 시간도 필요하고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다. 시간 들인 만큼, 공들인 만큼 결과가 말한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성급함은 때로 뒤탈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할만큼 빨리빨리를 선호한다. 그러나 시간이 익어가는 느림 안에 행복을 발견하는 지혜로움도 가져보면 어떨까? 마른 강낭콩을 물에 불려야 제대로 밥이 되듯이 순리 안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삶의 지혜를 강낭콩 밥을 지으며 배운다.













'자작 수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ㅡㅡ정리 유감  (0) 2022.12.19
하모니카 가슴  (0) 2022.12.18
인정의 꽃밭에서  (0) 2022.12.13
ㅡ새로워진다는 것은  (0) 2022.12.13
1원의 소중함  (0)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