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봄이 되어 살자
조 은 미
여고 동창 몇이 철원 잔도길 관광 예약을 하고 기대했는데 모객이 되지않아 갑자기 쌍계사 쪽으로 행선지가 변경되었다.
셋은 늘상 자주 만나던 친구였지만 한 친구는 오랜 외국 생활로 지난번 친구 아들 결혼식에서 졸업 후 처음 만난 터라 가깝게 여행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창이라는 유대감은 몇십 년 세월을 뛰어 넘어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늘 만났던 듯 말 몇 마디에 경계가 허물어진다.
잠실에서 7시 30분 출발하여 4시간여 달려 구례의 섬진강 대숲길에 닿는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울울창창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의 푸르름 앞에 압도 되어 경건한 마음이 된다.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윤선도의 오우가를 읖조려 본다.
세월이 가도 늘 푸른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벗들이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점심엔 화개장터에 들러
향토 음식인 뜨끈한 제첩국으로 섬진강의 풍미를 느껴본다. 진한 뽀얀 제첩 국물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정감이 넘치는 장터를 한 바퀴 돌아보다 파래김과 머위나물, 달래를 한 보따리 사서 신고식 한다며 나눔을 하는 통큰 할매의 넉넉한 마음씀에 고맙고 행복하다.
그 훈훈함에 그간 살아오며 오래 숙성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 하동 십리 벚꽃길은 온통 팝콘이 터진 듯 만개한 벚꽃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몇십 년 묵은 아름드리 고목의 낭창낭창 휘늘어진 가지마다 절정을 치닫는 그 우아함은 어린 벗나무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고혹적인 깊이가 있다.
환상적인 꽃구름 터널은 숨이 멎을 듯 현란하고 황홀하다. 바람이 스치니 난분분 꽃비가 내린다. 엑스터시의 짜릿한 무아경에 이른다.
이렇게 만개 때를 맞추기도 어려운데 이런 대박의 행운을 만나다니!
어제 잔도길을 다녀온 친구가 거기 길이 험하고 계단도 많고 걷는 거리도 길어 네 다리로는 어림도 없다며 모객이 취소되어 쌍계사 코스로 바뀐 것은 하늘이 도왔다는 말을 들으니 철원 코스가 캔슬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선하신 분의 계획하신 뜻이란 생각이 든다.
작은 것에도 주밀하게 만져주시는 손길을 느낀다. 늘 범사에 감사하며 살다보면 막다른 골목에서도 축복으로 통하는 다른 쪽 문이 나를 향해 열림을 생활 중에 다반사로 경함하며 산다.
좋으신 분!
어찌 그리 사랑하시는지?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나 있는 것 인지!
사랑하는 제 맘도 아시지요?
언제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그 분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벚꽃 흐드러진 길을
별말 아닌 말에도 소녀처럼 까르륵 거리며 몇십 년을 거슬러 타임머신을 타고 난다.
벚꽃도 장관이었지만 그보다 배를 잡고 구르는 묵은 벗들의 웃음꽃이 벚꽃보다 더 환하게 가슴에 핀다.
아무리 꽃구경이 좋다한들 혼자 와서 꽃을 보면 무슨 재미가 있으며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하랴!
점심 먹은 배가 금새 꺼질 정도로 웃음이 헤펏던 하루.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벗이 가까이 있다는 건 어떤 것 보다 귀한 축복이 아닐까?
얘들아 봄이 별거든?
고목에도 꽃이 피니 봄이고 비 와서 꽃 지니 꽃 피는 것도 한 때더라.
다리 건강하고 아직 가슴 뛸 때 부지런히 함께 여행 다니자꾸나
건강 유의하고 날마다 환한 얼굴로 웃음꽃 가꾸며 스스로 봄이 되어 산 날보다 남은 날이 짧은 우리의 시간 서로 있음에 감사하면서 꽃길만 걸으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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