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절어지는 샘물

조은미시인 2022. 5. 12. 07:18





젊어지는 샘물
조 은 미

어렸을 때 긴 겨울 밤이면 화롯가에 앉아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 가운데 젊어지는 샘물이라는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난다.

착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신비한 샘에서 샘물을 마시고 젊어져 행복하게 살았는데 같은 마을에 사는 욕심장이 영감이 그 소문을 듣고 샘가를 찾아가 욕심부려 샘물을 너무 많이 마시고 그만 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 50년은 젊어지는 샘물을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교대역에서 내려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걸음이 빨리진다. 내 또래의 마스크 쓴 여인 하나도 쪽지를 들고 어디를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는 앞을 지나친다.
50년 만에 서울교대 8회 8반 반창회를 하는 날이다.
이름하여 6988회.
69학번 8회 8반 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팔팔하게 오래 건강히 살라는 염원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니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들이 반갑게 맞는다.
반창회에 왔으니 아는 사람들이려니 하며 마주 손을 흔들어 화답을 보내지만 마스크 속에서 웃고 있는 눈들이 모두 생소하다.
앞에서 걷던 그 여인도 내가 자리에 앉자 좀 지난 후에
우리 방으로 들어선다.
아니 같은 장소를 찾는 아는 얼굴이었단 말이야?
마스크들을 벗으니 신기하게 뇌리에 박혀있던 20대의 그 얼굴 모습으로 차츰 변한다.
어느새 목소리까지 젊어져 한 톤이 높아진다.
최근 알며 만났던 사람은 조금만 뜸하게 만나면 이름도 가물거리는데 50년만에 만났는데도 입에서 절로 반가운 이름들이 튀어나온다.
얼굴을 보면 입고 다니던 옷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졸업하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지만 젊어지는 샘가에 앉아보니 풋풋하던 그 얼굴들이 그대로 보인다.
마음은 더 빨리 젊어져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간다.
모두들 그간 어찌 살았는지 돌아가며 자기 소개들을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정담으로 회포를 푼다.

다른 대학과 달리 졸업 후 같은 교직에 근무하다 퇴직하여 노후에 대부분 연금 생활 하며 고마고마하게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삶들이기에 오랫만에 만나도 이질감이 없고 어제 만난 것처럼 화제의 공감대가 넓어 대화하기가 편안하다.
누구처럼 동창회에 보석 주렁주렁 달고와 자랑하는 이도 없고 자식 자랑에 개거품 무는 덜 떨어진 위인도 없어 동창회 다녀와서 까닭 없이 입 나와 남편 잡을 일 없으니 집에서 기다리는 남편들도 편안하리라.

우리나라 초등 교육을 짊어지고 평생을 헌신한 그 삶들이 습관처럼 몸에 배여 나이에 걸맞게 품위를 지키며 익어가는 모습들이 대견하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참 다들 잘 살아 온 연륜이 겉모습에서도 보인다.
이만한 균일 집단의 지성들이 만나는 동창회가 또 있을까 싶어진다.

모두 건강하게 살아줘 고맙다. 이 샘물은 아무리 마셔도 딱 20대만큼만 젊어져 욕심부려 많이 마셔도 애기될 걱정은 없다니 이제라도 길 터서 알아놓은 길 잊지 않도록 자주 만나 얼굴 보며 사세나 그려.

그리움 길어 올려 오랜만에 마음까지 씻어내고 50년은 젊어져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하다.
날개단 사랑이 깃을 치는 오후.
새 정부 취임 때 맑은 하늘에 떳던 무지개가 내 가슴에도 뜬다.
벗들이여!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젊어진 마음으로 우리 자리 지키면서 건강하게 오래 동행하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염원하던 자유가 꽃 피는 그 날을 봐야 쓰지 않겠오?

아직 남아있는 봄의 꼬리를 붙들어매며 온 몸에 번지는 따사로움에 감사한다.
덕분에 젊어져 행복했던 날!
모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사랑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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