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밤새 비가 잠깐 내리긴 했어도 목타는 대지가 해갈 되기는 역부족이다.
언제 비 왔느냐 싶게 금새 마른 땅이 드러나 헉헉댄다.
시골, 서울 오가며 단도리 하느라 애는 써도 혼자 손으로는 능력의 한계를 느끼니 어느 한 쪽은 기울게 마련이다.
서울 집 작은 귀퉁이 화단은 돌아볼 새가 없어 눈길 한번 제대로 못 주고 멋대로 자라게 내버려두었더니 저마다 그 가뭄 가운데서도 양껏 가지를 뻗고 자라 덤불을 이룬다.
무심히 올려다 보니 저 혼자 자리 지키고 자란 뽕나무에 손가락 한 마디 굵기의 실한 오디가 새까맣게 달렸다.
그 열매를 맺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을 뽕나무가 신통하다. 불로 소득의 열매만 따기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뽕나무는 정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잎은 데쳐서 나물도 하고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기름에 튀겨 부각도 만들고 오디는 생으로 먹어도 좋고 쥬스나 잼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오디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여 노화방지에 좋고 루틴 성분은 혈관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다.
또한 동맥 경화, 고지혈증, 당뇨, 숙취 해소, 피부 미용에도 좋고 칼슘 성분이 많아 관절에도 도움이 된다니 그야말로 블랙 슈퍼 푸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 누에 치는 집이 없어 뽕나무가 시세가 없지만 어릴 땐 집집 마다 누에를 쳐서 농가 최고의 소득원으로 효자 노릇하며 귀하게 대접을 받기도 했다.
제법 큰 양재기 하나 가득 오디를 수확하며 기쁨에 젖는다.
가뭄 속에 달린 열매라 그런지 여느 때보다 더 당도가 높다.
오디 시럽을 만들까? 졸여서 쨈을 만들까?
아무래도 할용도는 시럽을 만드는게 좋을 듯 하다.
오디 1kg에 150g 정도의 설탕을 넣고 믹서에 갈아 소금 한 꼬집 넣어 약간 걸죽해질 때까지 졸인다. 레몬 즙을 넣어 풍미를 더하니 상큼한 향과 달큰한 맛이 입에 사르르 녹는다.
물에 희석해 얼음 좀 띄우고 쥬스를 만들면 환상적인 빛깔하며 자연의 맛이 여름철 건강 음료로 더할 나위 없다.
오디 시럽을 한 병 그득 담아놓으니 마음도 넉넉해진다.
저녁엔 며칠 집 밥을 못먹고 다녔더니 뭔가 허해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을 푸짐하게 끓여 먹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해물탕이나 끓어볼까 싶어 싱싱한 게와 낙지, 새우, 조개, 미더덕등 해물을 2만원어치 사니 늘 단골로 다니는 어물전 사장님께서 인심 즣게 넉넉히 챙겨주셔서 한 보따리 들고 온다.
요 며칠 이런 저런 모임이 있어 외식이 잦아 살림에 등한했더니 냉장고에 무 도막 하나 없고 야채라고는 상추 뿐이다. 멸치 육수를 내고 액젓에 마늘, 고추가루 풀어 다대기를 만들어 놓는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해물만 끓이는 것 보다 상추라도 넣고 끓여 보자 싶어 한 웅큼 가득 집어 넣고 같이 끓인다.
잡냄새를 잡기 위해 소주도 두어 수저 넣고 대파와 청양고추도 한 개 어슷어슷 썰어 넣어 준다.
세상에! 여느 때 먹던 해물탕 국물보다 뭔가 더 시원하면서도 입에 붙는 칼칼하고 개운한 뒷맛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해물탕에 상추가 어울리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각자 나름대로 다른 맛을 가진 해물들이 우러나 서로 어울려 환상적인 맛의 조화를 이룬다.
상추 된장국도 그리 시원하고 맛나더니 해물탕에 궁합이 맞을까 싶던 상추가 의외로 묘하게 조화로운 풍미로 맛의 새 지평을 연다. 이제 해물탕 끓일 때는 우정 상추를 레시피에 첨가해야겠다.
얼큰하고 푸짐한 해물탕으로 허한 속을 다스리며 든든하게 채우고나니 만사 느긋하고 행복해진다.
인간사도 그러려니 !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기를 죽이고 서로 안에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나 진정 하나 되는 행복을 맛볼 수 있으리라.
늘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은 삶을 생기롭게 한다.
오늘 처음 시도해본 오디 시럽과 상추 해물탕은 나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대박인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자기 아집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익숙한 것에 안주 하려는 관성이 있다.
나이 먹은 유세하며 뒷짐지고 이 참견 저 참견 잔소리 늘어놓지 말고 늘 배움 앞에 겸손하자.
나이 탓 하지 말고 새로움 앞에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 보자.
좀 실수가 된들 어떠랴.
어느새 실수도 용서될 나이 인 것을!
나는 늘 새로운 것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고 호기심이 생기는 일에는 주저 없이 달려가 확인해 보는 열정과 적극성이 있다. 그 에너지가 나를 조금이라도 젊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항상 긍정의 아이콘으로 매사 감사하며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몸이 젊어야만 젊은이 이던가?
몸은 젊어도 꿈도 없고 패기도 없는 애늙은이도 수두룩 하다.
믿음 안에 소망을 갖고 자족하며 늘 기쁘게 사는 내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다.
젊음이여! 몸이 후패했다고 먼저 달음질 치며 도망가지 말고 끝날까지 동행하며 쉬엄쉬엄 노닐다 가시게나.
아직 시들지 않는 열정과 이만큼이라도 건강 주심에 감사하며 오늘도 내 삶은 촉촉하게 물기가 차오르고 생기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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