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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춥지만은 않은

조은미시인 2025. 1. 5. 20:07

겨울이 춥지만은 않은
조  은 미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비상 계엄 선포로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국 가운데 무안 공항의 제주항공기  참사는  더욱  비통하게 한다. 새해의 희망은 자취를 감추고 회색 우울과 불안이 온 나라를 뒤덮는다.
주일 아침 현관을 여니 온 세상이 흰눈으로 덮였다. 순백의 순수로 덮인 세상이  마음까지  평화롭게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숫눈길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교회로 향한다.
실타래처럼 얼켜 풀기 어려운 정국의 난제들이  흰눈 덮인 설경처럼 맑고 투명하게 시시비비가 가려지기를  염원해본다.
제법 눈이 많이 쌓옜다. 교회서  돌아오니 누군지 모를 천사가 그새 다녀갔다.
마당 안까지 눈이 치워져있다.
눈이 오면 낭만보다 눈치우는 현실이 버거운 독거  노인에 대한 동네 이웃의 따뜻한 배려가 늘 가슴 저리게 고맙다.
토요일엔 논에 물을 대어 얼린 동네 썰매장이 개장을 했다. 아이들은 없지만  오래 전 잃어버린 동심으로 돌아간 마을 어른들의 겨울 놀이터가 되었다. 천막을 세우고 활활타는 장작불에 둘러 앉아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부녀 회원들이 따끈한 국수와 오뎅 ,떡볶이, 가오리 찜, 순대, 김밥까지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술잔을 권하며 주거니 받거니  정담이 이어지고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모두 하나 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2월까지  주말이면 모여 음식도 나누고  부녀회가 수익금으로  노인 회관 식사도 대접할 계획이란다. 오랜만에 썰매를 타며 내 유년이 따라온다. 활활 타는 난로 위에 군고구마 익어가는 내음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외지인들에게 텃세로 배타적인 곳이 많아 전원 생활이나 귀농을 꿈꾸는 분들이 선뜻 시골로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우리 마을은 외지인이나 현지인이나 구분 없이 서로 어울려 사이좋게 살아간다.  노인보다  장년층이  많아 생동감이 넘치는 마을이다. 귀농해온 젊은 인재들도 많아  언제나  활기가 살아 넘친다. 서울에서 가까운 산 좋고 물 좋은  아늑한 마을이다.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이름처럼 조용하고 살기 좋은 동네이다.  사람 살아가는  정이 살아있는 이곳  겨울이 춥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따라 눈 쌓인  정겨운 겨울 밤이  따사롭게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