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조 은 미
입춘 지나고 올들어 제일 춥다는 아침 이다.
현관문을 여니 매섭게 찬 기운이 뺨을 찌른다.
이런 날은 꼼짝 않고 집 안에 머무는게 상책이다.
아침 일과인 영어 공부와 성경 암송, 성경 읽기와 QT 를 마치고 나갈 일은 없지만 정갈하게 세수히고 화장대에 앉는다.
화장을 하는 일은 하루를 올곧게 가꾸는 일이다. 보여줄 사람은 없어도 스스로 단정한 모습으로 자신을 가꿀 때 하루가 정갈해지고 정돈 된다. 부스스히고 칙칙하던 얼굴이 뽀얗게 변하고 생기가 돈다. 5년은 젊어진 얼굴을 보며
'아직은 ' 하며 웃어본다. 거울도 따라 웃는다. 나이들수록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자존감을 세워가는 일은 삶의 활기와 노후의 품격을 만든다. 황태채와 불린 미역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미역국을 끓인다. 황태와 미역향이 어울지는 감칠 맛이 얼마나 시원하고 맛난지! 설설 끓는 미역국 한 대접에 든든하게 아침을 먹는다. 아직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 손으로 해먹을 수 있는 축복에 감사가 넘친다. 금방 들었던 핸드폰을 찾아 수없이 헤메고 오래 알던 사람 이름도 가끔 가물거릴 때가 있다. 말하고 싶은 단어가 입에서만 뱅뱅돌고 생각나지 않을 때 혹시 치매가 오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있으면 '아직은' 하고 스스로 위로가 된다. 오후가 되니 햇살이 퍼져 제법 나설만 하다. 서둘러 파크 구장에 나갈 채비를 한다. 늙으막에 만난 애인 덕분에 세상이 더 살 만 하다. 잔설이 남아있는 낯익은 꼬불 길을 운전하며 아직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직은' 다음에 따라붙는 수많은 긍정의 수식어가 나를 더 강하게 붙들어 세운다. '이나이에 뭘' 하는 소극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언어는 '아직 은' 앞에 기를 못 쓰게 무릎 꿇리고 나는 오늘도 나의 보호자로서 나를 지키며 씩씩하게 내 하루를 엮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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