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사랑
조 은 미
메뚜기도 한 철이라더니 요즘 내가 글신이 내렸는지 앉기만하면 쓸거리가 생각나니 참 신기한 일이다.
오늘은 침대 옆 스탠드를 보며 뭔가 써봐야되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런데 야속하게 스탠드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끙끙대다 그래도 친구 중 제일 영민하여 아직 그렇게 낡아보이지 않는 동창에게 안부삼아 전화를 했다. 반색을 하며 반기는 그녀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는 전등을 뭐라하지?" 뜬끔없는 질문에 황당했는지 서너개 이름을 대며 헛다리를 짚더니 급기야 스탠드? 하고 묻는다. 바로 그거였다. 스탠드라는 말이 그렇게도 생각이 안났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그러고도 글을 쓰고 있다는 현실이 대견스럽긴 하다.
내 침대 옆에 지인이 이사 선물로 사다준 원통형의 스탠드가 있다. 창호지가 속을 감싸고 촘촘히 비닐실로 몸통이 엮어진 평범하고 단순한 모양이다.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 그리 은근하고 정스러운지. 빛은 빛이로되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위압적이지 않으면서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넉넉함이 있다. 온 방안을 대낮같이 밝히며 분명하고 명쾌하여 인간미라고는 없는 전등과는 결이 다르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완벽하여 어쩐지 다가가기엔 조심스럽다. 전등빛은 감성 코드가 공감하기엔 너무 강해 피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따뜻한 교류보다 건조한 사무적인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사람도 그렇다. 너무 똑똑하고 빈틈이 없어 고개가 뻣뻣한 사람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좀 부족한 듯 해도 따뜻하고 빈 구석이 있어 내가 들어설 공간이 있는 푸근한 사람이 좋다. 사람은 어떤 사람 곁에 있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늘 불만이 많은 사람 옆에 있으면 내 삶 전체가 불만스럽다. 걱정이 많은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한숨이 는다. 늘 생글거리고 웃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내 삶도 생기롭고 활기가 넘친다. 스탠드 불빛처럼 은은하고 푸근하여 누구나 진솔하게 옆에 다가가고 싶은 편안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하루가 저문다. 보름이 가까워 볼에 살이 오른 상현달이 별님과 나란히 웃고 있다. 스탠드의 따사로운 불빛이 잔잔히 흐르는 love is blue에 실려 살포시 내 몸에 감긴다. 스물스물 추억이 기어나와 곁에 눕는다. 찰랑거리는 그리움에 두레박을 드리운다. 한가득 사랑을 길어 올린다. 보고픈 얼굴들이 떠오른다. 스탠드의 불빛이 가슴을 다독이는 감미로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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