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조은미
올해 들어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언제나 설렘이고 그리움이고 달콤한 추억이다.
온통 하얀 세상! 온갖 세상의 더러움을 모두 덮고 넓은 가슴으로 온 세상을 품는다.
앙상한 겨울나무들도 소복하게 눈꽃이 피었다.
낭만이 피고 환상이 핀다.
그러나 소녀 적인 몽환도 잠깐!
눈이 가져오는 현실은 너무 끔찍한 혼란과 상처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여기저기 차들이 엉키고 미끄러져 일어나는 끔찍한 사고들!
당장 집 앞에 쌓이는 눈을 치울 일도 엄두가 안 난다. 세 사는 사람들은 코앞의 제 발 딛는 곳도 쓸 생각을 안 하고
허리 부실한 우리 부부와 연로한 부모님 모시고 사는 우리 집만 빗자루 간 흔적이 없어 부지런한 동네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주말 마다 오는 아들 위해 주치 공간을 확보하는 일도 보통 만만한 일이 아니다. 늘 목요일 만 되면 온 신경이
집 앞길 방화수 수전이 있는 주인 없는 빈자리에 꽂힌다.
수시로 내다보다 얼른 비었을 때 잽싸게 갖다 찜해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들 차를 댈 공간이 없다.
옛날 같으면 내 집 앞이니 차 좀 빼달라고 하면 “미안합니다.” 하고 빼주는 게 예사지만 요즘은 그런 호사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예기다.
내 집 앞 턱밑이라도 제 각기 자기 자리가 따로 금이 그어져 있고 행여 수전이 있어 주차 하는 자리가 아닌 빈 자리는
그야말로 먼저 갖다 대는 사람이 임자다.
어제 용케 자리가 나 무슨 횡재인가 싶어 남편 차를 부리나케 대고 느긋하게 여유부리고 있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니
레커차가 와 있다.
어디서 사고가 났나하고 두리번거리는 데 핸드폰이 울린다.
우리 차가 사고 났으니 내려와 보란다. 황망하게 뛰어 내려가니 주차해 놓았던 남편 차가 폐차 직전으로 박살이 나있다.
빙판에 급브레이크 밟았던 승용차가 미끄러져 앞에서 들이받아 밀리면서 뒤에 서 있던 트럭에 후미가 부딪혀 완전
앞 뒤가 다 형체도 없이 뭉그러져 있었다.
사고 낸 운전자는 보험사 불러 처리하면 끝인 듯 저만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물러나 있고 보험사 직원만 나서서
행정처리를 해준다.
보험으로 처리해주겠다는 데야 아무리 쓰리고 아픈들 뭐라 말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주차해 놓은 차 받았으니 100% 상대방 잘못이어 이렇다 저렇다 군말 할 처지도 아니긴 하지만 그나마 뺑소니 안치고
보험사 불러 처리해주는 양심에 고맙게 생각하고 씁쓸하지만 사람이 상하지 않은 사고에 위안을 삼는다.
우리 인생도 때로 내가 아무 잘못한 일이 없는데 이유없이 힘들고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드는 때가 얼마나 많을까?
도저히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 원망할 대상도 없이 그렇게 아무리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주먹을 불끈 쥐어봐야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고 그렇게 굴러 가고 내 의지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일들....!
발 구르고 분노로 씩씩대봐야 내 발만 아프고 나만 상처 투성이가 되어 고단하고 지칠 뿐이다.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 내 혼자 나 잘나서 내 힘으로 살아가는 양 큰소리 치고 살아가지만 당장 오늘이라도
하나님 부르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놓고 가야만 하는 나약하고 어쩔 수 없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우리가 애쓰고 수고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자랑할 것이 못되는 것을 !
하나님의 분노의 손길이 한번 스치시면 모든 것이 스러지고 마는 허망한 인생인 것을!
그냥 겸손히 그분 앞에 머리 숙여 내 약함을 고백하고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가는 삶이 순리에 합당한 행복한
삶이 아닐까?
그분은 실수가 없으신 분 ! 그 분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 !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를 채우시는 분!
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 때로 당장의 고통이 너무 힘겹고 악한 자가 잘되고 선한자 자가 고통을
당하는 현실이 너무 불공평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일지라도 그 분의 가치는 우리와 다르신 분!
눈에 보이는 현재의 삶은 영원한 삶에 비하면 얼마나 찰나에 불과한지! 이생에서 현재의 삶이 끝이 아니기에
온전히 그 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우리를 향한 계획안에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고 따라 가면
험하고 어려운 길이라도 이길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신다.
날마다의 삶속에 아무런 사고 없이 살아가게 하시는 그 분의 기적 앞에 너무 감사가 부족했음을 느낀다.
사고를 통해서도 다시 한번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감사가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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