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무씨를 뿌리며

조은미시인 2021. 9. 7. 00:18


무씨를 뿌리며
조 은 미

빈 이랑을 풀밭으로 내주고 느긋하게 게으름 부려보려  작정했지만 손바닥만한 텃밭 하나를 가꾸지 못하고 풀 천지로 만들어 놓고 사나 동네 사람들 지나다라도 눈에 띄면 흉잡힐까 남사스럽고  무씨라도 뿌려 놓으면 좋은 벗들 왔을 때  갓뽑은 가을 무로 무생채라도 해주면 오죽 좋아할까 싶어  장화 챙겨 신고 장갑 무장하고 풀밭에 들어서니 이 녀석들도 여름내  무성하게 자라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지 손가락에 잡히는대로 날 잡아잡수 하고 쑥쑥 뽑힌다.
허리가 꼬부라지게 수고해도 나눌 기쁨을 생각하면 힘든 줄도 모르겠다.

훤해진 빈 이랑에 욕심껏 무씨를 뿌리고 배추도 열포기 남짓 심고 나니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흡족하다.
누구든 찾아오는 손에게 배추쌈이라도  대접하고 무라도 하나 뽑아 들려보내면 얼마나 정겹고 좋을까 싶으니  풍년들어 김장 일거리 만들까 아무 것도 심지 않으려했던 잠깐 동안의  짧은  소견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나 싶다. 잡풀과 작물이 한 곳에서 자랄 수는 없다. 작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을 뽑는 수고가 있어야한다.
게으르면 추수 때 거둘 것이 없다.풀을 뽑아야할 때 시기를 놓치면 결국 옥토도 풀밭으로 변하고 만다.

요즘 연일 들리는 뉴스를 보면  어쩐지 점점 황폐해 가는 풀밭에 서 있는 느낌이다.  모두 정신줄 놓고 풀을 뽑는 수고를  아끼며 그저 남의 일처럼 팔짱 끼고 있다 보면 어느새 이 나라는 황무한 풀밭으로 변하고 말지 않을까 싶다.
내년 대선에 모두 방관자로 서지 말고 내 밭을 지키는 사랑과 부지런함으로  잡풀을 가려 뽑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래서 훤해진  밭에  희망의 씨를 다시 뿌려야 하지 않겠는가?

정성스레 물을 주며  한 알이라도 허실 없이 싹이 트기를 기원해 본다.
손가락이 곱도록 수고했지만  무씨가 싹이 터 밭 이랑을 초록으로 덮을 꿈을 꾸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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