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감사의 등에 업혀오는 행복

조은미시인 2021. 9. 4. 20:58



감사의 등에 업혀오는 행복

고추 3대 심었더니 여름 내 풋고추를 따먹고도 남아 요리 홍치마로 갈아입고 요염을 떤다.
아이고 사랑스러운 것들!
대견스럽고 한 알도 소중해 조심조심 귀한 손님 다루듯 애지중지 하며 손 안에 잡히는 녀석들의 감촉만으로도 행복하다.
놀이 치고 이보다 엔돌핀이 솟는 소꼽놀이가 따로 없다.

여름내 고추 지키느라 수시로 김 매주고 약쳐주고 허리가 휘도록 일하시는 이웃을 보면 손바닥만한 텃밭이 얼마나 감사한지! 가을 김장 무우랑 배추를 한창  심는 철이지만 배추 무우 풍년 들어 김장까지 하는 덤태기 쓸까봐  겁나 쑥갓이랑 뽑아낸 빈 고랑을 아예 풀밭으로 내주고  돌아 보지도 않으리라 다짐하며 저 풀을 뽑고 무우라도  몇개 심을까 하는 유혹을  재갈 물려  돌려 세운다. 누가 그리 푸지게 먹겠다고 그 수고를 할까? 인심 좋은 이웃이 무우 서너개 먹어 보라고 주면 그걸로 족하지 내 분수에 맞게 딱 요만큼에서 자족하며 멈출 수 있는 절제도 살아가는 지혜이리라.

대문을 나서니 개울 건너 앞집의 사과나무는 조롱조롱 가지가 휘늘어진다.
빨갛게 익어 가는 사과를 보는 순간 어느새  간사한 마음은 요만큼의 벽을 넘는다.
  우리집 못닌이 사과들을 보며 금새 부러움이 고개를 쳐든다.
비교의 비수에  찔려 무참히 KO패 당하려는 순간 약 한 번 안치고 그렇게라도 열매를 달고 버텨준 고마움에 감사가 살며시 눈짓을 보낸다
순간 도리질 치며 나를 바로 세운다.
미안해. 작년에는 겨우 세알 달렸었는데
올해는 몇 갑절 애쓴 네 수고를 깜빡 했구나. 비교의 갈고리를 빼내며 비틀거리는 요만큼을 일으켜 세운다. 그래 딱 요만큼이 제일 행복한거야.

고마워.
비교를 몰아낸 자리에 감사가 제자리를 찾으며 빙그레 웃는다.
서산에 걸린 저녁놀도 웃음을 참느라 볼까지 붉어졌다.
하나 둘 별들이 놀러나온 그믐 밤  풀벌레의 합창 속에 소슬바람  타고 가을이 성큼 앞에 와 선다.
평화가 뜨락에 내려앉아 어깨를 감싼다.
그네에 흔들리며 감사의 등에 업혀온 행복에 미소를 보낸다.
오늘 하루도 무시히 지나게 하시고 특별한 기쁨을 허락하신 그분께  겸허하게 엎드려 감사의 두 손을 모은다.

'자작 수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씨를 뿌리며  (0) 2021.09.07
아는 게 보배 (산딸 나무 열매의 효능)  (0) 2021.09.06
인생을 놀이처럼  (0) 2021.09.04
행복을 잡는 지혜  (0) 2021.09.04
상처를 딛고 일어서며  (0)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