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내가 먼저 변해야

조은미시인 2022. 4. 24. 14:58
























내가 먼저 변해야
조 은 미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나야말로 한 두어 주일 하루도 삐줌한 날이 없이 계속 공사가 다망하게 나다니느라 엉덩이 붙이고 앉을 새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토요일 오랜만에 시골집을 향한다.
오가는 길목의 환상적인 벚꽃 길도 놓치고
대문앞 자목련도 끝물인지 고왔을 자색 빛이 바래 푸석한 얼굴로 서있다.
그래도 홍매화가 한창 붉고 소나무 밑의 노란
틴카와 휘늘어진 개나리가 환하게 뜨락을 지키고 있어 그나마 늦은 봄과 눈맞춤 하며 반 아쉬움을 달랜다.
잔디밭엔 갈퀴손 없는 평안을 틈타 민들레가 제 세상 만난듯 활개치고 보랏빛 제비 꽃도 한몫 거들어 기를 펴고 있다.
수양도도 도도하게 붉은 관을 쓰고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리 애간장을 태우던 다른 한 그루는 달랑 꽃 하나 잎 하나를 달고 그래도 살아있는 기척을 보내니 얼마나 반갑고 대견한지!
3년차인 배나무도 나도 살았어 하며 하얀 미소로 눈짓을 보내고 딸기도 보리수도 자두 꽃도 올해는 닥지닥지 가지마다 빼곡히 꽃들이 들어차 봄을 열고 있다.
작년에 온마당을 채우며 현란함을 뽐내던 꽃잔디는 무슨 까닭인지 거의 죽어 썰렁하고 군데군데 모진 추위 이겨내고 살아남은 녀석들만 한숨을 돌리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어 안타깝고 여간 서운하지 않다.
꽃대궐처럼 장관을 이루더니 누렇게 말라버린 잎들만 까칠하니 황량하다.
그래도 죽은 잎새 사이에서 파랗게 발돋움하는 녀석도 더러 있으니 기대를 가져본다.
그 녀석들이 자라서 또 한 번 화사하던 옛 영화를 회복할지 누가 알랴!
라일락과 명자나무 두 그루의 새 식구를 들여 자리 잡아주고 장미 죽은 가지도 좀 솎아내고 나니
그것도 일이라고 하리가 무너난다.
이젠 이것들 돌보고 가꾸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것 같다.
일을 보면 엄두가 안나고 팔딱거려 지지가 않는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의 나이는 한 해 한 해가 달라지니 자연의 순리에 그저 순응하며 살아야 되리라.
이젠 잔디밭의 이방인인 냉이도 민들레도 꽃이련 해야지 그것 다 가려 뽑이내다간 손가락도 허리도 부지를 못할것 같다.
모쪼록 넉넉한 마음으로 그러련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시골 생할이 점점 짐이 될것 같다.
그래 상대가 변하길 바라는 건 터무니 없는 욕심일 뿐이다.
내가 변하는 것이 제일 빠른 해결책이다.
잔디밭의 잡초도 꽃으로 보니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젠 아이들이 바톤 텃치를 좀 해주면 좋으련만 아직 제 일들이 바쁘니 이리 한가하게 자연 안에 마음 내려놓고 살기도 어디 그리 쉬운 노릇인가?
모든게 적절한 때가 있는 법
그냥 순리 따라 살아가자.
아닌 것에 고집 부리고 바상대지 말고 나를 내려놓고 있는 자리에서 감사하며 즐기고 살자.
잔디밭이 민들레밭 된다고 세상이 달라지기야 할까?
그래 민들레 너도 예쁘고 냉이꽃 너도 예쁘다.
한눈 질끈 감고 상대의 좋은 점을 바라보고 까칠하게 남의 잘못을 도끼눈 부라리며 들쳐내지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한 발 양보하면서 어울렁 더울렁 그리 어울리며 살자.
실바람이 지나다 창가에 머문다
햇살도 한 소끔 다리를 쉬어간다.
마당에 지천으로 늘어진 쑥을 뜯어 쑥전 한 접시 부쳐 허기를 달랜다.
아! 한가롭고 나른한 오후의 행복함이여!
감사가 살포시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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