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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감사

모든 것이 감사 조 은 미 어제는 울산에서 모처럼 고항에 다니러온 초등학교 남자 동창이 번개팅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열명 남짓 모였다. 그 시절 버스도 드문드문 다니던 산골 마을에서 경동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의 기업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친구는 늘 동창들의 자랑이고 어깨였다. 겸손하고 동창들에게 잘 베푸는 넉넉하고 온화한 인품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친구가 어제도 점심 대접을 해서 모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점심 후엔 우리집으로 차 마신다고 모여와서 손바닥만한 내 놀이터 텃밭에 고추, 토마토, 가지,각종 나무새 모종 몇 대씩을 심어 주고 갔다. 100 세 시대라 하지만 80세 까지 생존 확률이 30%, 85세까지는 15%, 90 세까지는 5%라는 통계가 나와있는 걸 보면 70 넘은..

내가 먼저 변해야

내가 먼저 변해야 조 은 미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나야말로 한 두어 주일 하루도 삐줌한 날이 없이 계속 공사가 다망하게 나다니느라 엉덩이 붙이고 앉을 새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토요일 오랜만에 시골집을 향한다. 오가는 길목의 환상적인 벚꽃 길도 놓치고 대문앞 자목련도 끝물인지 고왔을 자색 빛이 바래 푸석한 얼굴로 서있다. 그래도 홍매화가 한창 붉고 소나무 밑의 노란 틴카와 휘늘어진 개나리가 환하게 뜨락을 지키고 있어 그나마 늦은 봄과 눈맞춤 하며 반 아쉬움을 달랜다. 잔디밭엔 갈퀴손 없는 평안을 틈타 민들레가 제 세상 만난듯 활개치고 보랏빛 제비 꽃도 한몫 거들어 기를 펴고 있다. 수양도도 도도하게 붉은 관을 쓰고 의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리 애간장을 태우던 다른 한 그루는 ..

외삼촌 천국 길을 환송하며

외삼촌 천국 길을 환송하며 조은 미 살면서 가까운 혈육을 먼저 보낸디는 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슬픔이 있다. 4월 18일 그간 치매로 오래 병상에 누워계셨지만 늘 그만그만 하셔서 그리 갑자기 가시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단 한 분이신 외삼촌께서 별세하셨다는 부음을 받고 황망하기 그지없다. 내게는 부모님 맞잡이로 보살펴주셨던 분이셨기에 그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지고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무심함이 더 죄스럽게 여겨져 죄송함과 서운함이 몰려온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군인이시라 전속이 잦으시고 건강치 못하셨던 엄마의 잦은 와병으로 외갓집에서 많이 자랐고 중고교 시절에도 지방에 멀리 계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서울살이 하시는 외삼촌 댁에서 신세를 지고 학교에 다녔기에 외삼촌과의 추억이 더 각별히 가슴에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