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와서

조은미시인 2018. 4. 1. 08:40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와서

 

중구문협 봄 문학기행에 초대받아 윤동주 문학관에 다녀왔다.

연희전문 시절 누상동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후배 정병욱과 하숙하며 가까이 인왕산을 오르면서 시작과 시심을 키워가던 윤종주 시인의 행적을 기려 2012년 종로구청에서 와우아파트 사건으로 철거되어 폐허가 되었던 청운아파트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문학관으로 꾸몄다.

 

전시실은 3전시실로 나누어져 있는데 시인채 제 1전시실은 9개의 전시대에 시인의 일생을 시대별로 담은 사진과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있고 열린 우물이라 명명한 제 2전시실은 윤동주의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뚜껑을 열고 하늘과 바람과 별이 만들어내는 자연과 함께 윤동주 시인의 시심과 영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리모델링 되었다.

물이 저장되었던 탱크의 곰팡이와 습기가 천장을 개방함으로 자연스럽게 제거되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벽의 흔적들과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바라보는 열린 하늘은 순수하게 자연을 노래한 시인의 시상을 공감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컨셉인 것 같다.

제 3전시실은 원형그대로 보존된 탱크의 닫힌 우물의 이미지를 재현하여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담은 10여분 정도 길이의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이었는데 마치 시인이 갇혀있던 후쿠오카 형무소와 비슷한 이미지를 느끼게 해 영화를 보는 내내 그토록 그리던 광복의 기쁨을 눈앞에 두고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억울하게 숨져간 시인의 죽음을 생각하며 가슴이 무너지는 애통함으로 먹먹해진다.

 

야외에는 관람객이 쉴 수 있는 별뜨락 휴식 공간이 있고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있어 윤동주 시인을 추억하며 한 때를 보내기에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길목에 봄볕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뺨에 닫는 바람도 달큰하다.

 

문학관 입구에 그 유명한 윤동주의 대표시 ‘서시’ 와 ‘새로운 길’ 이 걸려있다.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간략하게 서술하면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에서 유복하게 태어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고 동명소학교를 거쳐 신사참배 거부 항의표시로 숭실중을 자퇴하고 용정 광명중을 졸업한 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다가 일본에 유학할 현실적 필요에서 히라누마로 창씨개명을 해서 1942년 릿코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유학 중 모국어로만 시를 쓰다 다음 해 7월10일 고종사촌 송명규가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방학을 이용하여 본가로 돌아오려 짐까지 부치고 준비하던 중 뒤이어 윤동주도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2년 징역형을 언도 받고 복역하던 중 29세의 약관의 나이에 광복을 눈앞에 두고 1945년 2월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의문의 옥사를 하였다.

일설에는 생체실험용 독극물 주사에 의한 의문사로 추정하기도 한다.

 

정병욱 시인에게 보냈던 육필 원고가 남아 본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고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란 제목으로 정음사에서 유고시집을 출간했다.

순수한 감성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세상을 살면서 눌 새로운 길을 찾아 정진하는 삶을 살았던 윤동주 시인!우리 문학사에 큰 별이 되어 후배 문인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지않는 별이 되어 추앙을 받고 있다.

‘서시’와 ‘새로운 길’을 되뇌이며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되어본다.

문학관 관람 후 옹기종기 둘러 앉아 시낭송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까운 문우들과 함께하는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좋은 자리에 초대해주신 중구문협 김기동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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