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입 속에 봄을 가두며

조은미시인 2018. 4. 3. 17:22

 

 

 

 

 

 

 

 

 

온천지가 봄꽃으로 아우성인데 묵안리 우리 동네는 워낙 안으로 들어온 골짜기라 그런지 아직 개나리 민들레만 선잠을 깨 기척을 한다

그래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죽은 듯한 가지에 파릇파릇 잎눈들이

살아있다는 눈인사를 보낸다.

앞마당 빈터를 곡괭이로 파일구고 밑거름을 넣고 백일홍 씨를 뿌린다

풍성한 기쁨으로 보답할 향연을 기대하며 듬뿍 물을 준다.

오랜만에 함성을 지르며 활기차게 뿜어나오는 물줄기에도 봄의 소리가 들린다.

손바닥만한 땅 일구는 것도 일이라고 어느새 땀이 솟는다.

내친 김에 나무마다 웃거름을 고루 뿌려준다.

그새 제누리 때가 겨웠다.

겨울을 뚫고 어김없이 고개를 내미는 풀들

그 생명력에 경의를 보내며 아직은 한여름 한판 격투를 유보한다.

심지도 않은 파도 촉이 굵었다.

어린 쑥과 파를 뜯어 밀가루 풀어 번철에 두르고 노릇하게 지져낸다

벗과 마주앉아 상큼한 봄을 씹는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아! 이싱그러운 향기

봄이 입속에 먼저 녹아든다.

사랑도 행복도 풍선 처럼 부푸는 식탁

묵은 김치 깊은 맛에 우리의 수다도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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