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524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조 은 미 하이선이 그냥 지나치긴 못내 아쉬운 듯 제법 나무들을 흔들어 대며 심술을 부리더니 여름도 같이 업어 갔는지 아침 운동 길이 제법 스산하다. 황토빛 분노를 쏟아내며 무섭게 포효하던 앞 실개천도 언제 그랬냐는듯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줄기가 새색시 처럼 음전하다. 길섶의 보라빛 벌개미취가 청초한 얼굴로 인사하고 백도라지도 질세라 꽃망울을 터친다. 벼이삭이 팬 초록 들판은 녀석들의 엉그럭이 늘어저 바람 부는대로 그네를 타며 춤을 춘다 잔뜩 긴장했던 공포가 서서히 스러지는 행간에 콧등을 간질이는 실바람마저 상큼하고 소슬한 아침의 신선한 기운이 가득찬 온천지엔 평화가 넘친다. 코로나 19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령된 비대면의 일상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혼란된 극도..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을 기다리며 조 은 미 태풍 하이선의 경고가 공포스러운 폭풍 전야의 정적 가운데 비교적 조용히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우산을 받쳐들고 늘 하던 대로 동네 둘레길을 걸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 저녁 5바퀴씩 돌자는 스스로의 약속에 묶여 습관처럼 돌다보니 뱃살도 조금 홀쭉해지고 종아리 근욱도 제법 단단해지고 다리에도 힘이 붙는 것 같다. 우산을 쓰고 빗 속을 걷는 것도 꾀 낭만이 느껴진다. 뺨에 스치는 빗방울도 빨간 장화 끝에 채이는 빗물 소리도 손에 들려 따라오는 음악소리와 어울려 촉촉히 가슴에 스며든다. 빗 속에 지킨 자신과의 약속을 대견스러워하며 운동을 마치고 들어와 빗방울 한껏 머금은 뜨락의 다알리아와 끝물 장미, 여전히 울타리를 지키고 선 봉선화의 애잔함에 마음이 젖는..

장마의 끝

장마의 끝 조 은 미 정부에서 여행비를 지원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친구들 끼리 제주도라도 가자고 작당하며 모처럼 코로나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는가 했더니 그 설레임도 잠시 꼬리 잘린 히드라가 재생하듯 코로나 유령은 다시 살아나 일상을 목죄어 온다. 온통 뉴스마다 코로나 이야기로 도배가 되고 서로 네 탓 책임 떠넘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우린 또 다시 코로나의 볼모가 되어 손발이 묶인채 고립 무원의 수용소에 갇혀 모든 관계의 고리를 끊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공공의 이익에 개인의 자유가 함몰 중이다.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견뎌내야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의무이기에 묵묵히 받아들이며 강제된 자유 속에 모처럼의 여유를 건져 올린다. 유례 없는 장마가 훑고간 뜨락 여기 저기 제 사상 만난 듯 웃자란 풀들과..

반짝 해든 날

반짝 해든 날 조 은 미 오랫만에 쨍 해가 난다. 온통 몸도 마음도 눅눅하던 우울에서 해방된다, 장마 때문에 벼르고 미루던 미용실에 들러 시원하게 머리도 쳐내고 퍼머도 한다. 돌돌거리며 우울이 잘려나간다. 가끔 머리 자르듯 마음의 가지도 쳐내고 살아야겠다. 작은 변신으로 5년은 덤으로 선물을 받은 듯 기분이 상큼해진다. 이번 수해에 피해 입으신 이재민들께도 하루 빨리 반짝 해들 날 있으시길 간절히 빌어본다. 힘 내세요.

소확행

소확행 조 은 미 코로나 19 적과의 동침만도 힘에 겨운데 그칠줄 모르는 장마와의 사투 속에 순식간에 모든 걸 수마에 빼앗긴 이재민 들의 고통이 안타깝게 한다. 남의 아픔을 보는 것 만으로도 어딘가 몸이 아파오고 우울의 늪 속에 갇힌다. 오전 중 잠깐 빗줄기가 멈추고 환하게 개이듯 변덕을 부리는 틈새 근 반년 실히 못 만난 대학 동기 절친들과 오늘은 만사 젖혀놓고 필히 만나자 의기 투합한다. 삼성 코엑스 몰에서 오랫 만에 사람 틈새에 섞이며 반가운 해후에 가슴 속에서 부터 엔돌핀이 솟는다. 그냥 함께만 있어도 좋은 벗들! 만남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그동안 뭉첬던 울화를 수다로 풀어내며 따뜻한 행복감에 느긋이 머문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이 공분하고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

참외 김치

참외김치 조 은 미 연일 구중거리던 장맛비가 아침 나절 잠깐 삐줌하게 멈춘다. 물을 잔뜩 머금은 마당의 풑들이 쉽게 손으로도 뿌리가 뽑힌다. 무성하던 참외 덩굴이 장마에 다 녹아 맨 땅이 드러난 이랑엔 아직 채 익지도 않은 참외가 열개 남짓 딩군다. 그간 공들인 게 아깝고 더 놓아두었다간 제 풀에 곯아 문드러지고 말 것 같아 일단 소쿠리 따서 깨끗이 씻는다. 그냥은 못먹겠고 명색이 참외니 오이보다 낫겠지 싶어 양념에 버무려 김치라도 담아볼 요량을 한다.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내 깍뚝 썰기로 썰어 새우젓 ,멸치액젓에 고추가루, 파 , 마늘 , 매실 액기스, 설탕을 조금 넣고 모자란 간은 소금으로 맞추어 버무리니 참외 김치가 완성된다. 참외의 아삭한 식감과 양념 맛이 어우러져 바로 먹어도 입에 붙는다. 예상..

부라보 백두산

부라보 백두산! 조 은 미 화사하다는 뜻은 환하고 아름답다라는 긍정적인 뜻을 가진 우리 말이다. 4번째 화요일 만나는 모임이라해서 화사회라는 이름을 가진 서울교대 8회 동기 모임은 화사하다는 중의적인 뜻이 더 어울릴만한 모임이다. 졸업한지 50년이 지나 기존 만나던 모임에 New Face가 되어 나간다는 게 조금은 낯서설음으로 주저되기도 했지만 동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나는 벗들과 너니 내니 말을 터놓는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어느새 나이는 6~70% 세일가에 그 시절로 돌아가 깔깔거리고 웃으며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고 행복은 덤으로 거저 줏어오게 되니 참 고맙고 감사한 모임 이다. 오늘이 4번째 화요일 화사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연일 장맛비에 날씨 걱정을 했더니 날씨까지 받쳐줘 비가 멈춘 하늘엔 걷기..

고추 다데기

고추 다데기 조 은 미 비오고 난 끝이라 텃밭은 갈퀴손이 지나간듯 황폐하다. 아랑마다 웃자란 풀이 작물을 덮고 싱싱하던 참외 줄기는 장마에 다 녹았다. 몇개 꾀 굵은 참외가 익기는 할라나? 상추도 볼쌍사납게 삐쭉 키만 커 땅바닥에 널부러져 아예 다 뽑아 치우고 비설겆이에 아침 내 땀 꾀나 흘린다. 고추는 올망졸망 많이도 열렸다. 한 소쿠리 실히 따고나니 이것 처치할게 또 걱정이다. 처리 방안에 골몰하다 얼마전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맛나게 먹었던 고추 다대기에 생각이 미쳐 급히 전화를 걸어 레시피를 받고 한번 시도해보기로 한다. 고추는 깨끗이 씻어 카터기에 몇 번 돌려 잘게 다져 놓는다. 마른 팬에 잔 멸치 달달 볶아 냄비 밑에 깔고 마늘 편 썰어 다진 고추와 함께 섞어 약불에 고추를 저어가며 익힌다. 제..

사과빵

사과빵 조 은 미 시부모님 , 시누, 우리 4식구가 한집에서 벅적거릴 때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 부엌에 매여서 언제나 이 일 벗어날까 싶더니 어느새 시어른, 시누님, 돌아가시고 아이들 마저 출가하고 난 빈 집에 부엌의 책임에서 벗어난 지금 맛있다며 같이 먹어줄 사람도 없는데 뒤늦게 늦바람이 불어 부엌에서 서성이며 뭘 만드는 내가 참 생경스럽기 까지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집에 있다보니 새잡이로 요리하는 소꼽놀이에 빠져 시간 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은 일이라도 놀이가 되니 즐겁기도 하고 새로운 요리가 내 손에 만들어 지면 대견하고 자랑도 하고 싶어 이집저집 나누게도 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든가? 냉장고에 어느 적에 넣어둔 사과 몇알이 시들어가고 있다. 오늘은 이 사과를..

감자 피자 재 도전

감자 피자 재 도전 조 은 미 장마 끝나고 2주일만에 시골집에 내려와 보니 온 마당이 풀 천지에 쓰러진 꽃들 하며 도무지 엄두가 안난다. 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두어시간 꼬박 땀 흘리며 다독거리고 나니 금새 제모습 갖추고 배시시 웃는다. 자연에도 give and take의 주는 만큼 반응하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 세상 공짜는 없는 법. 공짜의 가면에 함몰되어 제 스스로 속아넘어가 미래를 저당 잡하는 작금의 현실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한숨 돌리고 밭에서 갓 딴 풋고추, 가지, 토마토를 활용할 방법을 생각하다 엊그제 실패한 감자 피자에 재도전 해보기로한다. 이름하여 조은미 표 감자 가지 피자! 이번엔 레시피도 없이 그동안 익혔던 감각을 활용하여 솜씨를 발휘해본다. 중 감자..